1994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의뢰인’은 마피아와 어린 목격자 간의 이야기를 다룬 법률 영화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개봉한 영화 ‘의뢰인’은 재판 스릴러를 주제로 한 영화다. 존그리샴은 ‘의뢰인’이라는 소설책을 출간하였고, KBS는 ‘의뢰인 K’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는 ‘의뢰인’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변호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은 어떤 사람일까.

혹자는 선임료를 많이 지불한 의뢰인을 꼽을 것이다. 또는 잘생긴 미남 미녀 의뢰인일수도 있겠다. 착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온갖 잡일과 궂은 일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의뢰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불성실 변론을 이유로 진정이나 고소를 한 의뢰인이나, 무죄를 받아 냈다고 사무실에 와서 큰절을 하는 의뢰인도 기억에 남는 법이다.

변호사는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의뢰인을 잘 만나는 복이 있어야 한다. 의뢰인은 변호사를 힘들게 하면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게도 해 준다. 말 그대로 변호사에게 의뢰인은 함께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운명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이 있다. 75세 된 포항 출신의 경상도 사나이였다. 어르신은 공직에서 정년을 마치고 여생을 보내는 중 허리가 좋지 않아 유명 척추전문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했다. 수술부위에 염증이 발생해서 좋아하는 골프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한채 일년 동안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다. 더욱 더 가슴 아픈 일은 해당 집도의로부터 어떠한 인간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힘든 의료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변호사 비용, 인지대와 송달료, 신체 감정료와 진료기록 감정료 합계 팔백여 만원을 들여 의료소송을 제기했다. 이년 동안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법원은 고작 육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화해 권고결정을 내렸다. 현행 손해배상 체계에서 환자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위자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손해배상금액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서 차마 성공보수를 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육백만원을 그대로 어르신 명의의 계좌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며칠 뒤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어르신은 전화상으로 “이 변호사님, 얼마 되지 않지만, 이 돈을 나와 같은 의료사고를 당한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싸울 때 사용해 주십시오. 저는 처음부터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많은 의료소송을 수행해 왔지만 이런 격려의 말은 처음이었다. 말 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앞으로 의료 전문 변호사로서 맡게 될 사건들을 어떻게 진행해 가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어르신은 삼년 뒤 연락이 와서 다른 사건을 의뢰해 주셨고, 그 사건은 1심과 2심까지 전부 승소했다. 성공보수를 감사할 정도로 챙겨주셨다. 가끔은 여직원이 동향이라고 좋아하시며, 사무실 근처에 오시면 식사도 사 주셨다. 그리고 어느새 3년이 벌써 지났다. 나도 모르게 어르신으로부터 또 연락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인재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우성)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