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변호사(연수원 34기), 북오션

논어 ‘자한’편에는 자주 쓰는 고사성어가 등장합니다. 不舍晝夜(불사주야)! 여기서 舍(사)는 ‘쉬다’‘휴식하다’는 뜻이니 ‘밤낮을 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공자가 강가에 서서 한 말이라 하여 ‘천상지탄’이라고 하는데, 그 전문은 ‘흘러가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아서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입니다.

특별히 어려운 한자도 없고 해석이 곤란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뜻이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호학자, 교육자로서의 공자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부지런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라고 풀이하는 반면, 실천가로서의 공자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참된 도는 행해지지 않고 세월만 빠르게 흘러가버린 것을 한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가 긍정과 낙관의 메시지라면 후자는 부정과 비관의 메시지입니다. 이와 같은 예는 무수히 많습니다. ‘이인’편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자의 말이 나옵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

공자가 얼마나 진리(도)를 갈구하고 열망했는지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통상적으로는 “사물의 궁극적 이치를 깨닫는 일이 어렵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공자는 진리(도)는 높고 먼데 있지 않고 낮고 가까운데 있으며, “도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어렵고,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도를 깨닫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공자가 말년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 현실을 탄식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디선가 참된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논어에 반하다’는 이처럼 상반된 해석이 공존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 이유를 텍스트의 특징에서 찾는 한편, 기존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자유롭고 담대한 해석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천 사람의 마음속엔 응당 천명의 공자가 있고, 다산 정약용은 논어로부터 얻는 새로운 깨달음에 대해 ‘추수 끝난 논에 남아 있는 벼 포기와 이삭들이 다 주울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습니다. 한가할 때 본서를 일독하면서 자기만의 공자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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