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TT(관세 무역 일반 협정) 체제의 단심제와 달리,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서는 양심제를 도입해 패널 판정에 대해 이의가 있는 회원국은 상소기구(Appellate Body)에 항소, 해당 분쟁의 WTO 협정 위반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받을 수 있다. 패널 심리에서는 매 분쟁마다 3인의 전문가를 패널 위원으로 선정해 분쟁을 심리하지만, 상소기구 심리에서는 상설 상소기구가 심리를 진행해 WTO 협정 해석 및 적용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다자무역체제의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WTO협정상 상소기구는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회원국의 총의로 임명된다. 각 위원에 대해서는 최초 임명 시 4년의 임기가 주어지며, 한 번 재임명이 가능해 재임명이 되면 총 8년 동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국제통상법 분야의 최고심판기관으로 역할을 해 온 WTO 상소기구가 최근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 공석에 대한 후임 선정 절차 개시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에 2017년 이래 발생한 공석 4건에 대한 후임 선정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3인의 위원도 2019년 말, 2020년 말 각각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상소기구 위원 선정 절차 개시에 대한 미국의 반대가 지속될 경우 상소기구는 사실상 고사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자국이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체제적 우려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소기구 위원 선정 절차 개시에 참여할 수 없으며, 체제적 우려 해소에 대한 논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체제적 우려의 예로 이른바 ‘Rule 15 문제’를 들고 있다. 이는 특정 상소기구 위원에게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배당된 분쟁을,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도 계속 담당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현재는 상소기구 작업절차 제15항(Rule 15)에 따라 상소기구가 계속 담당 여부를 결정하고, DSB(WTO 산하 무역분쟁 해결기구)에 이를 통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상소기구 위원의 임기 문제는 DSB의 승인 사항이므로 상소기구가 협정상 인정되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외에도 최근 DSB 회의에서 WTO 패널 및 상소기구가 국내법의 의미에 대해 판단하는 문제, 분쟁해결에 필요하지 않은 권고적 의견을 제시하는 문제 등도 WTO 협정상 허용되지 않은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국이 WTO 분쟁 해결 제도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소기구 마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회원국들의 움직임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우리나라를 포함한 13개 통상장관이 캐나다 오타와에 모여 분쟁해결 체제 강화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명한 공동성명을 채택했으며, EU 등 일부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분쟁해결절차 개선을 위한 제안서도 준비되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보호주의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WTO 다자무역규범의 핵심인 분쟁해결 절차가 원활하게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특히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WTO 회원국들이 현재 위기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고 건설적으로 논의함으로써, 상소기구 위기를 하루 빨리 극복하고 다자무역체제가 회복·강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영범 주제네바대표부 2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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