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영혼의 윤회를 믿지 않는다. 즉 유쾌하지는 않지만 죽음이 삶의 끝(壁)이라고 생각하지 새로운 삶의 문(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유전자(DNA)가 자손을 통하여 이어지기 때문에 인간이 영속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 다소 위안을 얻고 있다.

윤회를 믿지 않으므로 필자는 불교신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 삼독은 늘 가슴에 새기면서 살려고 노력한다. 탐진치 삼독이란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를 가리킨다. 탐욕은 본능적 욕구를 포함해서 (정도를 지나쳐) 탐내서 구하는 것을 말하고, 진에는 뜻에 맞지 않을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노여움이며, 우치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에 어두운 것을 말한다.

다른 견해가 있지만 필자는 삼독의 근본은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그 출발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나 이 세상(사바세계)의 근본이치는 뜻(욕심)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뜻(욕심)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노여움이 일어나고, 이러한 탐욕과 노여움에 의하여 사리분별이 어두워지고 이로 인해 결국 어리석은 결정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탐욕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을 5욕이라고 하는데, 변호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다보면 민사든 형사든 결국 송사의 근원이 색욕, 재물욕, 명예욕 등 탐욕에서 출발한 노여움과 어리석음임을 알게 된다.

민사재판은 거의 대부분 재물욕의 경연장이고 형사재판은 다양한 탐욕(색욕 때문에 성범죄가, 재물욕 때문에 재산범죄나 뇌물죄가, 승진 등 명예욕 때문에 직권남용이나 잘못된 수사, 재판이 있게 된다)의 경연장이다.

삼독의 근원이 탐욕이므로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탐욕을 없애는 것이다. 즉 욕심을 완전히 없앨수는 없더라도 욕심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가진 만큼 부자가 아니라 모자라지 않는 만큼 부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상당한 수행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인간이 욕심을 적절하게 제어 통제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필자가 내세우는 해법은 욕심을 줄이려고 너무 애쓸 것이 아니라 욕심은 마음껏 내되 욕심대로 되지 않을 때(거의 대부분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세상의 이치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임을 알고 노여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욕심대로 되지 않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화냄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어리석음으로도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화냄과 이로 인한 어리석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욕심대로 되지 않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탐욕은 개인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게도 적용된다. 집단의 탐욕은 개인의 탐욕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인류의 탐욕으로 인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온다고 예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욕심의 경연장인 법정에서 생활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가 인간의 탐진치로 인한 분쟁의 예방·해결에 있으므로 인간에게 탐진치 삼독이 있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된다.

 

 

/이동명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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