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오랜만에 결혼식에 참석했다. 부조만 이체하거나, 결혼식에 참석해도 눈도장만 찍고 나와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날은 시누이 아들 결혼식이어서 마지막 가족사진 촬영으로 출석 도장을 찍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결혼식 전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것은 내 결혼식 이후 처음인 듯했다.

위풍당당하게 입장하는 신랑. 너무나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인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신랑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속도로 입장해서 신랑에게 바통 터치가 되었다.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이건 뭐지?’ 너무나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다들 진지하게 동참하고 있는 모습들이 더 우스웠다. 목사님의 주례사에는 어김없이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등장했다. 목사님들을 어찌 다들 예외 없이 성악가 톤을 가졌는지. 그조차도 진부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설교까지 덧붙여졌다. 복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렇게까지 불쾌했던 적은 없었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라는 설정도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어서 불편했다. 평소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 결혼식이 이렇게까지 불편하다면 이런 형식과 이런 제도는 잘못 되어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다.

남배우는 없는데 여배우는 있고, 남대생은 없는데 여대생은 있고, 남직원은 없는데 여직원은 있고. 그런 걸 일일이 문제 삼는 사람들을 보면서 ‘구태여 그럴 필요까지는…’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회식자리에서 여직원이 술을 따라야 제 맛이라고 할 때도 이를 거부하지 못했고, 명절 때 시댁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왜 며느리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널리 자행되고 있는 이런 진부한 결혼식에 돌을 던질 수 있게 되다니,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변화시킨 것일까.

나를 변화시킨 건 나의 삶이다.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의 2남 1녀로 태어나 “가시나가 그래서 어따 쓰겠노”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지만 그 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서울로 유학 간 자식도, 혼자 힘으로 대학을 나온 자식도 내가 유일했다. 딸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가치관을 가지신 부모님 덕에 나는 강한 사람이 되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여자라는 틀로 나를 한계 짓거나 제한해본 적이 없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삶이 매순간 너무나 절박했기에 스스로도 여자라는 사실을 자각할 틈이 없었다. 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오랜 기간 잘 해왔다. 그런 나에게 ‘너는 여자니까, 너는 여자라서’라는 말로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잘해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한 사람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잘해왔다.

“양성평등은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지금까지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열심히 잘 살아왔는지 자각하는 과정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도록 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러기에는 당신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박정교 변호사·전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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