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촉발된 사법 농단 사태와 전직 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검찰 수사, 그 과정을 지켜보는 법원 내부 구성원들의 혼란과 우려 속에 드디어 사법행정 개혁안이 골자를 드러냈다. 사법부와 정치권력 사이 통로가 됐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상당 부분 덜어내 사법행정회의로 넘기는 것이 개혁안의 핵심이다. 공정한 재판과 올바른 판결에 매진해야 할 법관들이 승진을 위해 행정보직을 선망할 수밖에 없었던 본말의 전도를 바로잡는 것 역시 이번 개혁안의 주요 해법 중 하나다. 앞으로 법원행정처를 대신할 법원사무처에 더 이상 현직 법관은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사법개혁 이슈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숱하게 지적되고 시도돼 왔지만 그 때마다 한계 앞에 무력했다. 진단의 부족, 성급한 해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법 기득권의 저항과 그 저항 앞에 정치적 셈으로 목적을 잃은 국회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곤 했다. 법원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래서 이미 권태롭다. 8년 전 나는 <보수의 비정상성 안에서 사법부에 대한 우려와 기대>라는 글을 본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보수를 참칭하며 그 이념에 기생하는 비정상성을 경계하면서 그런 조짐이 엿보이는 사법부를 우려한 글이었다. 그 사이 사법부는 최상위층부터 보이지 않게 곪아들었다. 사법 농단 정황이 처참하게 드러난 지금, 비록 고루한 질문이나 과연 어느 법관이 조직 변화의 필요성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이번 사법개혁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법원은 신뢰를 잃었다. 더 이상 국민은 판결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고, 그 회복 속도는 견딜 수 없게 더딜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역할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법원 조직의 구조적 문제와 핵심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리길 바란다. 행정은 사무처에 맡기고 오직 판결로서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길 바란다. 국민이 법원에 기대하는 시대적 사명은 그저 법원 본연의 업무일 뿐이나 그 무게는 어느 때보다 묵직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개정된 법원조직법은 그 자체로 성공을 담보할까? 모든 혁신의 성공은 “그래, 한 번 해보자”는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전제한다. ‘틀’만큼 중요한 게 ‘내부 동력’이다. 외부의 손을 탄 해법에 “어디 한 번 해봐” 식의 대응은 또다시 익숙한 쳇바퀴처럼 사법개혁 실패를 불러올 것이다. 법원 구성원들의 진지한 의지가 결집됐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폭발력을 가져올 수 있을 터. 비록 법원 밖 공기가 섞인 개혁안이지만, 개혁의 단초가 됐던 사법농단 수사는 법관들의 자성의 목소리가 모여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진실과 정의와 쇄신을 갈구했던 그 목소리가 구호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보루’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반드시 되찾아올 수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지선 MBC 기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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