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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한국문제와 UN
노동영 변호사  |  noic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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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호] 승인 2018.11.12  09: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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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은 국제연합일이었다. UN이 우리와 무슨 긴밀한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 UN이 창설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24일이다. 따라서 이 날짜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9271호)’에 의해 국제연합일로 법정 기념하고 있다. 동 규정은 ‘국제연합 창립과 6·25사변 중 국제연합군이 참전한 뜻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고 명시한다. 또한 부산에 UN의 유일한 공식묘지인 UN기념공원이 있다.

1945년 12월부터 시작된 미국·영국·구소련 모스크바 외무장관회의에서 전후 처리의 하나로 한국에 대한 임시민주정부 수립과 연합국 신탁통치의 구체적 실시방안이 다뤄졌는데, 미국은 UN의 감시하에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의 총선거를 실시하고 선출된 대의원들이 전국적인 임시의회를 구성할 것과, 수립된 임시정부가 완전한 독립 및 미국·구소련 점령군 철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미국·영국·중국·구소련 4대국과 토의할 것을 제안했다. 영국·중국의 동의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이 거부함에 따라, 1947년 9월 17일 미국이 ‘한국문제(Korean Question)’를 UN총회 의제로 상정시킴으로써 한국문제는 마침내 UN의 무대로 옮겨지게 되었다(故 이한기 교수님의 “한국통일문제와 UN의 권능”이라는 1976년 논문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1945년 당시 회원국 51개국으로 UN이 창설되고, 70여년이 지난 이래 UN은 현재 193개국의 회원국이 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국제기구가 됐다. UN헌장이 체결된 샌프란시스코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지대한 발전이 있었다. 특히 국제법 발전에 있어 UN의 영향은 더욱 그렇다. UN의 창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 당시 국제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행한 UN의 일련의 결의들은 한국문제에 있어 안보리에서 구소련의 기권 및 거부권 행사, 안보리 기능 마비에 대처하기 위한 총회의 책임 있는 행동, UN의 군사행동(지금의 유엔사), 휴전협정 등과 관련하여, 또 회원국의 UN 가입과 국가승인,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UN헌장상의 강제조치 등도 국제법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성으로써 결속력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 기초하여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통해 무력충돌을 포함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해하는 경우에 대하여 평화적 수단 및 정의와 국제법에 따라 UN헌장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전통적인 ‘국가안보’ 중심의 UN의 목적(헌장 제1조 제1항)으로 이해돼 왔지만, 사람들의 평등권 및 자결권의 존중, 평화를 강화하는 기타의 적절한 조치, 국제적 협력을 통한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존중 등 ‘인간안보(human security)’ 역시 UN의 목적(헌장 제1조 제2항과 제3항)이며, 이제는 인간안보의 구현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안보는 인권 및 경제적·사회적 국제협력과 분리될 수 없다. 2006년 안보리 결의 제1674호에서 평화와 안전·발전·인권은 UN체제의 지주이고 집단안보 및 복리를 위한 기초이며, 평화와 안전·발전· 인권은 관련되고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특히 UN헌장 제7장에 의한 안보리의 강제조치는 국가, 비국가행위자, 개인을 대상으로 침략행위·인권침해·국제인도법 위반·대량난민사태 등의 종결, UN의 선거 감시를 통해 합법성을 부여한 정부의 수립, 평화협정의 시행, 테러를 위한 자금 조달 차단,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예방 등을 위해 광범위하게 부여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UN 창설 당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안보리의 강제조치는 국제법이 기저에서 작동되면서, 가령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의 방위와 국제사회의 집단안전보장을 위해 무력충돌에 대하여 행하던 전통적인 성격으로부터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집단살해(genocide)·중대한 인권침해 등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까지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취해지는데, 법의 지배가 고려된 안보리의 강제조치의 경우 그 강력한 권한행사에 대해 법적 한계는 별로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문제’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에 이은 전후처리, 남·북 분단에 따른 하나의 민주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휴전, 유엔사의 주둔, UN의 동시가입, 북한문제까지 UN에서 논의됐거나 논의되고 있는 문제로써 UN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한국이 광복 후 정상적인 국가로 출발하려는 순간부터 UN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야 하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UN이 단순히 ‘외세’의 개입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남·북의 자결권 행사를 가벼이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남·북의 자결권 행사를 더욱 정당화시키는 동시에 주변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강력히 지지하는 주체로서 UN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완전한 독립은 통일이다. 한국문제의 귀결인 한반도 통일에 있어 UN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영 변호사(충북회·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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