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방부 관계자들이 ‘노크 귀순’이란 말을 들으면 치를 떨었다고 한다. 북한군 병사가 한국군 GOP 창문을 두드리며 “똑똑, 저 귀순할게요.”라고 했을 것만 같은, 말이 주는 이미지 때문일 테다.

국방부의 노크 귀순 같은, 요즘 검찰의 손톱 밑 가시는 ‘밤샘 조사’가 아닐까 싶다. 어두컴컴한 조사실에서 검사가 피의자를 재우지 않으면서 밤새 묻고 또 묻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며 괴롭히는 장면이 연상되는, 그 밤샘 조사 말이다.

포문은 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열었다. 이 판사는 지난달 16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검찰의 밤샘 수사 관행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또 “밤샘 조사로 작성된 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척하면 단박에 고칠 수 있다. 법관의 결단이 남았다”라고도 했다.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검찰의 밤샘 조사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건 지당한 말씀이다. 다만 밤샘 수사를 받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말의 뜻은 글자(text)가 아니라 상황(context)에 의해 정해진다.

통상 유명인은 조사를 받을 때 경호나 언론 노출을 부담스러워해 소환 횟수를 줄이기 희망한다고 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정 기간 내에 조사할 양은 정해져 있는데 횟수를 줄이니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무 이후에 출석을 원하는 경우도 그렇다. 최근 사법농단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는 일부 법관들이다. 정시 퇴근 이후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8시쯤 조사실에 왔다고 하면 1~2시간 조사를 받고 조서만 열람해도 자정을 넘긴다는 얘기다.

원래 밤샘 조사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지지만, 유명인이나 일부 법관은 손해 볼 게 없는 셈이다. 오히려 야간 조사를 해도 다음 날 똑같이 출근해야 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밑지는 장사다.

2012년 노크 귀순 사건 발생 당시 대북경계 허술과 기강해이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군은 관련자 14명이란 역대 최대규모 문책을 단행해야 했다.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판사가 쓴 밤샘 조사 비판 글에 대한 여론은 싸늘했다. 글이 올라온 시점은 사법농단 의혹 실무 지휘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밤샘 조사를 받은 다음 날이었고, 작성자는 임 전 차장의 고등학교·대학교 동문 선배인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다.

그래도 “법원은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라거나 “검찰의 이메일 압수수색은 명백한 위법으로 법원 전체, 나아가 국민 모두에 심각한 문제(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라는 고위 법관들의 항변은 이어졌다.

국민 모두가 아는 부끄러움을 이들만 모른다면 그만큼 사법부와 국민 정서 간 괴리가 크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만약 알고도 ‘국민 걱정’ 운운했다면 뻔뻔함일 거다. 사법개혁의 길이 요원해 보인다.

 

 

/손인해 뉴스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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