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에 기사화된 사건 중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이혼 소송 과정에서 법정을 오가다 만난 상대방, 부인과 불륜관계에 빠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변호사가 의뢰인과 불륜관계에 빠졌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상대방과 불륜관계에 빠졌다는 말은 들어본 바 없기에 참 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구나 싶었다.

이 사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2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해당 변호사에게 과태료 400만원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관련기사를 검색해 보니 ‘솜방망이 처분’ ‘막장변호사’ 등 별로 여론이 좋지 않게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기세로 간다면 요즘 생각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국회에서 ‘막장변호사방지법’이라도 나올지도 모르겠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해당 변호사 행위는 변호사로서 금도를 한참 넘었던 것 같다. 변협 조사위에 따르면 해당 변호사는 의뢰인의 아내와 불륜관계를 맺은 것과 별개로 의뢰인이 데리고 있던 자녀들을 유인해 아내 쪽으로 빼돌렸고, 의뢰인이 과거 별거 중 다른 여성을 만났다는 등 이혼 소송에 불리한 정보를 아내에게 알려줬으며, 의뢰인이 아내 명의 자동차를 처분한 사실을 알리고 이에 관해 아내 편에서 고소장까지 작성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위임에 따라 그 직무를 수행하고, 변호사와 의뢰인은 위임계약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변호사는 의뢰인에 대해 민법상 규정 및 위임계약에서 정한 내용에 따른 의무를 부담한다. 민법은 수임인의 의무로 선관주의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이는 간단히 말하면 위임받은 사무를 위임 본지에 따라 ‘잘’ 처리해줄 의무를 의미한다.

충실의무는 우리나라 민법이나 변호사법에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선관주의의무와 함께 이를 변호사의 근본적인 의무로 인정한다. 충실의무에 따라 변호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의뢰인이 아닌 자신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하는 것이 금지된다. 변호사 충실의무는 ‘이익충돌’ 상황에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이를 일반적으로 ‘이익충돌회피의무’라고 칭한다.

해당 변호사의 행위는 의뢰인 이익을 반하고 제3자 이익을 위한 행위를 한 것이므로 전형적인 충실의무 위반 사례다. 변호사법에 충실의무를 명시하는 규정이 없다보니 징계위에서는 ‘전가의 보도’인 품위유지의무위반을 징계 근거로 삼은 것으로 이해된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이게 ‘품위유지’의 문제냐고 딴죽을 걸어도 해당 변호사를 규율할 별다른 규정이 없으니 징계위로서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법에 변호사 충실의무 규정을 도입하는 것을 변협이 추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동일한 위임계약관계로 이해되는 주식회사 이사에 대해서는 이미 1998년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상법 제382조의3)” 규정을 두어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법령 또는 제도의 정비는 극단적인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도 별로 일어나기 힘든 극단적인 사건이나, 변호사가 충실의무를 위반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번 사건이 충실의무의 중요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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