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구나 한 인간을 정신적으로 탄생시키고 꾸준히 성장하게 하는 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병들게 하거나 심리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제는 사랑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심리적 문제들은 사랑을 잃은 이후 맞이하는 상실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작가 김형경의 ‘좋은 이별’이란 에세이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또 이별을 하기도 한다. 이별 후 겪게 되는 감정과 애도 그리고 치유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한다.

그러나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에는 소위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 범죄 등 데이트폭력이 자주 등장한다. 이별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파멸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청의 데이트폭력 형사입건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6675건에서 2017년 1만303건으로 최근 3년간 데이트폭력이 54.3% 증가했다고 한다.

혐의별로는 ‘상해·폭행’이 가장 많지만 ‘살인·살인미수’도 353건에 이르렀고, 그 외에도 감금·협박, 스토킹, 주거침입, 명예훼손, 성폭력 등 그 유형도 다양하게 나타나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리벤지 포르노범을 강력히 응징해달라는 청원이 넘쳐나는 등 우리 사회는 이미 데이트폭력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엄벌을 위한 제도를 강화하는 등 데이트폭력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은 당연하다.

그런데 분명 그들도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을텐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든 것일까?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겠지만, 특히 연인관계나 남녀관계는 두 사람의 의사나 감정이 합치되는 경우에 지속가능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두 사람 중 한명이라도 그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애초 시작할 수 없거나 이미 시작된 관계라도 해소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소위 ‘쿨’하게 이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의 기술’의 저자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실존양식을 소유와 존재로 나눈다. 소유양식은 모든 것을 나의 소유로 만들려는 삶을 말하고, 반면 존재양식은 모든 것과 참다운 관계를 맺으려는 삶을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연인을 두고 “넌 내 꺼야!”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연인을 소유하고 사랑을 소유하려고 한다. 데이트폭력은 소유하려는 욕망의 산물이다. 연인을 지배, 구속하고자 하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물론 상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요즘, 소유에 집착해야만 원하는 바를 관철시킬 수 있는 세상에서 소유하려는 개인적 욕망을 탓할 수만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별로 인한 상실의 감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상대방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남길 자격까지 그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소유양식을 넘어 존재양식으로 나아가라는 에리히 프롬의 제안에 귀 기울여야 한다. 특히 사랑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하려 하기보다 참다운 관계를 맺고 배려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좋은 이별’은 참다운 사랑의 연장이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김현성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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