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는 영화를 보았다. 범죄자들을 변호하고 의뢰인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악질 변호사는 한편으로 무고한 의뢰인을 감옥에 보내게 될까 두려워한다. 폭행 사건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는 젊은 백만장자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그 백만장자가 지난날 자신이 의뢰인에게 유죄를 인정하게 해 15년형을 받게 했던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자극적인 스펙터클 너머로 변호사의 실제 있을 법한 내적 갈등을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주인공이 옛 의뢰인에게 유죄를 인정하게 할 때 증언과 증거가 모순되는 상황이었다. 옛 의뢰인의 결백은 증명할 증거는 하나도 없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허황되게 들렸다.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그럴듯한 게 항상 진실은 아니었고, 주인공은 자신이 끔찍이 두려워하던 일을 저지른 것이 됐다.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재판을 영원히 미룰 수는 없고 반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결국 재판에서 패소할 것이다. 영화엔 당시 자백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사형을 선고 받았을 것이라는 장면도 있다. 불가역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있는 것이 나았을까?

백만장자는 이번 사건의 범인이었으며 옛 사건의 진범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는 그 사실을 말할 수 없다. 변호사는 의뢰를 받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변호인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의무와 비밀유지의무가 충돌한다. 업무상 알게 된 증언과 증거들을 말하는 순간 주인공의 변호사 인생은 끝장이었다.

영화에서는 다소 불법적인 수단들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자기가 맡은 사건에서는 무죄를 받게 하지만 이전 사건의 정보들을 경찰과 검찰에게 흘려 체포되게 하는 식으로. 비밀유지의무를 몰래 위반한 셈이다.

위법적 수단이 필연적이었던 것인지 법정 스릴러의 스펙터클을 위해 그런 방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무고한 옛 의뢰인을 구하면서 죄인이 죗값을 치르게 할 방법은.

훌륭한 법조인이라면,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고한 옛 의뢰인이 감옥에서 썩어가도록 두지도 않을 것이다.

로스쿨에서는 모든 학생에게 법조윤리를 가르친다. 법조윤리 시간에 배운 것은 너무나 명료하다. 그러나 현실이 항상 명료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애매하고 미심쩍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정답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 틀린 선택을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진호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1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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