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 합격하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산이다. 막상 연수원을 수료했지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곳에서 면접을 보는 일은 대략 난감했다. 결국은 향후 10년 뒤 미래를 생각해서 의료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 법률사무소에 취직을 했다.

변호사가 된 지 한달 만에 부산에 재판을 가게 되었다. 수술을 하다가 뇌에 공기 색전이 발생해서 중증 뇌손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아무리 기록을 읽고 또 읽어도 색전이니 혈전, 그리고 혈관연축 등 의학용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산에 간다는 마음에 조금 기분이 들뜨기도 해서 연수원 동기에게 연락해서 점심 약속까지 잡았다. 밤늦게 두꺼운 기록을 가방에 넣어 퇴근을 했지만 막상 집에서 기록을 본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고, 다음날 일찍 일어났지만 막상 부산까지 가는 여정 때문에 기록을 한번 더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재판시간에 맞추어 법정에 들어갔다.

재판장님은 서울에서 의료 전문변호사가 왔다고 생각하고, 질문부터 하였다. ‘혈전과 색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전날 기록을 보고 설명을 들었지만, 1개월이 채 안된 변호사가 법정에서 부장판사님이 물어보는 색전과 혈전의 차이를 구술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직 여름이 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조금 더 난감한 상황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개발새발 아는 것을 총 동원해서 색전과 혈전의 차이를 설명했지만, 재판장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짧은 변론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가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에워쌌다. “변호사님 서울서 내려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어떤 말은 비수처럼 나의 심장을 후벼 팠고, 다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의뢰인들은 눈치가 백단이었고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지만, 의뢰인들에게 점심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원망하는 눈빛을 뒤로 한 채 법원을 벗어났다. 낭만을 생각하고 부산에 첫 재판을 왔지만, 대략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동기와 점심을 먹고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고 택시와 비행기를 번갈아 타고 밤늦게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동기 변호사는 나를 보자마자 오늘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오늘 점심 때 사무실에 긴급회의가 있었는데, 주제는 지방에 출장을 갔을 때는 업무를 마치면 바로 사무실로 복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나에게 지방 재판은 변론과 유람도 포함하는 것이지만, 대표 변호사에게 지방재판은 오직 변론만 있었다. 마음 속이 매우 착잡한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지방재판이 끝남과 동시에 아무런 고민과 느낌 없이 바로 서울로 직행하였다. 더 이상의 난감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개업 변호사가 되면 지방 재판 시 여유를 누려 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막상 지방재판이 끝나고 나면 몸이 알아서 서울행 차편을 타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 난감한 상황이다.

 

/이인재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우성)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