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삶의 궁극적 목표를 행복이라고 이야기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를 뜻하고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고 되어 있다.

보통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하냐는 질문에 확실히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통상의 사람들은 비록 현실에 일부 불만이 있더라도 그런대로 삶에 어느 정도 애착을 가지고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국어사전식으로 정의하면 거의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인간이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끝이 없는 욕심 때문에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충분함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을 뿐 아니라 충분함을 느끼다가도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누군가와 비교하는 순간 다시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질이든 사회적 지위이든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도박판의 법칙이 있다. 오래전에 라스베이거스 여행 중에 깨달은 것인데 가장 많이 땄을 때가 본전이라는 것이다. 1000불로 시작해서 2000불까지 땄다가 1500불인 상태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500불을 땄다고 생각하지 않고 500불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기분이 나빠지며 다시 적어도 본전인 2000불이 될 때 그만 두겠다고 계속하다가 1500불도 다 잃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을 것을 이루고 가졌어도 이때가 본전이라고 느끼고 최상의 상태를 지키고 더 늘리려면, 일시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되더라도 언제나 다시 더 많은 것을 탐하게 되고 결국은 뜻대로 되지 않아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언제부턴가 행복과 불행의 입증책임에 관하여 불행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상당한 마음의 위안을 느끼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행복에게 입증책임이 있어 행복을 입증하지 못할 때 불행해진다면 도를 통하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하면 불행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대부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나쁜 상태에 있어도 더 나쁜 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으므로 완전히 불행한 상태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 그러한 자신보다 더 나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완벽하게 불행하지는 않을 수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돈도 벌고 자기 수양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구속된 형사사건의 의뢰인을 접견하고 나면, 괴롭거나 좋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뢰인보다 최악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위안을 받게 되고,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활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많은 욕심을 버리고 지금 확실하게 불행하지 않다면 즉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불행함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정말 더 행복해짐을 느낄 수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법률가들이라도 불행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믿고 행복하게 살도록 노력하자.

 

/이동명 변호사·서울회(법무법인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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