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시리즈 우승팀과 미국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맞붙으면 우리가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혹 어떤이는 야구역사나 실력 면에서 우리가 이길 확률이 10퍼센트도 안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이는 공은 둥그니까 50대50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은 이길 확률이 78%, 질 확률이 22%라고 한다. 과학적으로 혹은 확률학적으로 그 78% 중에서 다시 78% 즉, 60%는 무엇을 하든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은행을 만들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대할 때 ‘돈을 맡기는 사람이 많을까. 빌리러 오는 사람이 많을까’가 궁금했다. 돈을 맡기는 사람이 많아야 은행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승산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가졌다. 모의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통계를 내어보았더니 78대22라는 확률이 나왔다고 한다. 더군다나 공기 중 질소 대 산소의 비율 또한 78대22이고, 몸을 구성하는 물과 나머지 요소의 비율도 78대22이고, 네모 속에 원을 그리면 원이 차지하는 공간과 나머지 공간의 비율도 78대22라고 한다. 신기하다. 아마도 저는 아니지만, 아무리 잘나가는 변호사일지라도 그 승률은 78%를 넘지 못하리라. 결국 22%는 무언가 부족하여 보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또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78%를 제외하고는 허술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게 어디서 본 책의 골자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가 모든 소송영역에서 월등한 수준의 실력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결국은 변호사 각자가 잘하는 영역,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야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변호사계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기본바탕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2. 액체가 기체로 변하려면 540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변호사도 차원이 다른 변호사로 변하려면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장자’에 보면 ‘먕량’이야기가 나온다. 엷은 그림자(그림자의 그림자)가 본 그림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조금 전에 걸어가다가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리 줏대가 없소?” 그러자 본 그림자가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라고 대답한다. 멋진 말이다.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계는 모든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 변호사들도 결국은 의뢰인과의 관계, 동료변호사의 관계, 법원과 검찰과의 관계 속에 있지 않은가.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살면 어떨까 싶다. 내게 나타나는 빛과도 그림자와도 잘 관계하여,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에 맞게 적절하게 공명하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장자’의 제물론에는 이 망량이야기 다음에 ‘호접지몽’(나비꿈)이 나온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 사실 나비만큼이나 인간의 삶 자체도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할 것인가를 아는 게, 삶의 최고 기술이라 일컫는다. 주역(周易) 역시 그 변화의 원리를 연구하여 체계화한 학문(?)이다. 호접지몽의 마지막 문구가 ‘물화(物化)’이다. 결국 나비도 인간도 물이라면 변화를 꿈꾼다는 말이 된다. 우리 옛 선조들도 얼마나 변화를 중시했으면, 광화문·홍화문·돈화문 등으로 화(化)자를 붙였겠는가. 뭔가가 되고 싶은 열망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급속한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변호사도 변화에 발맞추어 가능하고도 올바른 물화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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