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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판사와 기자
유환구 한국일보 기자  |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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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호] 승인 2018.10.01  16: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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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들은 싫어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판사란 직업은 기자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실명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실명 원칙을 고수해온 배경에도 유사한 점이 있다. 판결문이나 기사 모두 한 사람이나 단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무게를 지니는 만큼 ‘이름을 걸고’ 제대로 쓰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기자나 판사나 욕을 참 많이 먹는다. 기자들이야 딱히 설명할 것도 없다. 포털사이트에서 아무 기사나 클릭해도 십중팔구는 ‘악플’이 ‘베플’이다. 요즘 기자들을 아예 ‘쓰레기’라는 말과 합쳐 ‘기레기’로 부르는 게 고유명사가 됐다. 판사 역시 욕 먹는 게 숙명인 직업이다. 판결문 하나 쓸 때마다 무조건 한쪽의 원망을 살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주목을 받는 재판이라도 맡게 되면 평생 비난이 따라 다니기 십상이다.

최근 사법부 모습을 지켜보며 이 같은 생각이 한층 심화됐다. 사실 앞서 말한 것들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와 기자 모두 국민의 신뢰가 전제될 때에만 비로소 존재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그것이다.

사법부는 국가의 공식 권력기관인 삼부(행정·입법·사법) 중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시험(로스쿨)을 합격(졸업)하신 대단한 분들이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법과 양심만을 따라 독립적인 판결을 내리라고 주어진 특권이다.

언론은 삼부 기관에 이은 ‘제 4부’라고 불릴 만큼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지만, 선출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언론이란 이유로 최소한의 견제조차 받지 않아왔다. 이 또한 국민들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라고 주어진 특혜라면 특혜다.

그런 점에서 ‘욕 먹는 게 일상이 된’ 세태는 그저 한탄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공익을 위해 일할 거라 믿고 특권을 제공해온 주권자(국민)들이 그 신뢰를 거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나 기자 모두 직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사법부는 훨씬 극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는 법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단박에 사라지게 했다. ‘안희정 1심 재판’이나, ‘곰탕집 성추행 재판’ 등 판사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는 사건이 최근 잇따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신뢰 회복에 이렇다 할 묘수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이름을 걸고’ 정확한 기사와 공정한 판결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조건은 있다.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입으로는 반성한다 말하면서 과거 잘못을 덮기 급급하고 조직보호에 혈안이 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국민들은 ‘기레기’에 이어 ‘판레기’라는 말을 유행시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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