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유난히도 눈부셨던 날, 나는 이리 저리 소송과 의뢰인들에게 지쳐 있던 터라 아직 어린 나의 아들과 더 높고 더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아들과 함께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던 나는 잠시 갖게 된 여유 속에서 문득 내가 진행해 왔던 소송의 당사자들 삶과 그들의 사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치열했던 소송 자체에서 기억되는 다툼의 공방을 떠나… 소송의 과정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던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여성변호사로서 가사소송을 접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가사, 특히 ‘이혼’이라는 단어가 소송 앞에 붙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에는 다른 가정을 파탄으로 이끈다는 생각이 들어 이혼소송을 맡기가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소송을 진행하며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혼소송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가정폭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녀’라는 굴레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속적으로 매질을 당해야 했던 여인을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던 사건이 그러했고, 소송 중간에 ‘부부상담’이라는 과정을 거쳐 부부간의 문제가 마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투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소송을 취하한 부부의 사건이 그러했다.

또한 자신의 아픔에만 급급했던 어른들이 가사소송을 통하여 그 아픔 속에 더욱더 좌절하고 눈을 떨구고 있는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 그러했으며, 양육비라는 것이 단순히 상대방으로부터 아이를 수단으로 하여 받은 나의 용돈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것이며 부모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사실을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그러했으며, 양육이란 자신의 입장과 환경에 맞추어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과 상황에 맞추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을 당사자들이 인정해 가는 것이 그러했다.

이혼소송의 특징은 당사자들의 가장 내밀하고도 깊숙한 곳에 있는 그들의 삶과 치부들을 소송을 위해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송을 진행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내용과 상관 없이 그들은 아프고 또… 아프다.

내가 그들의 아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었고, 심지어는 이혼소송 과정을 통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이혼이 아니라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 이혼소송은 결과적으로 가정을 파탄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이혼소송이 다른 소송들보다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속단이 부끄러웠다.

나는 이혼소송의 서면 속 그 한줄 한줄이 당사자의 인생을 결정하는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이 된다는 것을, 제출된 서증 속의 사진 한장 한장이 아이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절박한 절규의 외침이 된다는 것을 소송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서면 속에 드러나는 문장 속의 그 무게가 다른 어떤 소송보다도 더욱 깊고 무겁게 다가왔다. 그런 당사자들의 심정을 잘 알기에 가정법원의 재판부에서도 한땀 한땀 수를 놓듯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당사자들의 삶을 결정짓는 판결문을 써주시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 어느 것도 의미 없는 소송은 없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