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를 뚫고, 유독 뜨거웠던 폭염을 지나 마침내 가을이 왔습니다. 깨끗한 하늘, 시원한 바람. 이 좋은 계절을 흠뻑 만끽하고자 지난주, 커피 한잔을 손에 쥐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가을바람에 맞추어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참을 걷는데 우연히 윤동주 문학제 현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평소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얇은 옷차림에 가을바람이 생각보다 차게 느껴져 그냥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시’가 들려왔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음색에 맞추어 때로는 나긋하게, 때로는 힘 있게 읊는 시인 윤동주의 목소리에 한껏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홀린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의 시는 한껏 나이를 먹었는데 윤동주 시인이 시를 쓴 게 20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주변의 그 나이의 아이들, 제 지난 20대 초반을 돌이켜 보면 한 없이 어린 나이인 것 같은데 어쩜 그렇게 성숙한 시를 쓸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감탄하다가도 한편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분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비해 행복한 시절을 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시는 누구에게나 너무도 친숙한 ‘별 헤는 밤’이었습니다. 낭송을 듣기 전 “‘헤다’가 ‘세다’의 사투리여서 하마터면 ‘별 세는 밤’이 될 뻔했다, ‘헤다’이기 때문에 이 시는 마치 별을 하나하나 세면서 헤아리는 밤으로 읽힌다”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는데 그 탓일까요, 이어지는 시 낭송을 듣고 있으려니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무수히도 많은 별이 쏟아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비록 그 별들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때마침 불어오는 나뭇잎을 흔드는 가을바람 소리가 별이 반짝이는 소리처럼 들려, 그 자리에서 저는 그 별들을 하나하나 헤고 있었습니다.어느 가을 밤, 우연히 행운처럼 찾아온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인생은 순간순간 찾아올 이런 행복으로 가득한 것이라고,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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