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political correctness)의 시작은 1975년 미국여성기구의 회장 캐런 드크로(Karen C. Decrew)가 만든 말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잡으려는 운동이었다. 당시 PC운동 진영의 포용력엔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의 운동에 반대하거나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PC운동 반대자들은 새로운 매카시즘이라고 비난하며 권위주의적 리버럴리즘이란 모순적 단어까지 등장했다.

대학들이 시류에 편승해 앞다퉈 PC운동을 수용하는 경쟁을 한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듀크대학은 흑인 학생을 조롱하는 얼굴 표정을 찾아내기 위한 감시위원회를 조직했다. 미네소타 대학은 성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의 치어리더 활동을 금지시켰다. 치어리더 여학생들이 자신들은 괜찮다고 반발하자 대학 측은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희생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비서를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에게 지난달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을 진행한 서울 서부지방법원 앞에선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 유죄’를 외치는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성폭력 사건 전담 재판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벌써부터 항소심 재판부의 과거 성폭행범에 대한 중형 판결이 언론에 함께 오르내린다. 첫 미투 판결로 의미가 부여된 안 전 지사에 대한 재판은 언론을 통해서 하나의 상징으로 다뤄지고 있다. 미투 운동은 PC 운동보다 피해 사례가 보다 직접적이고 또 구체적이다. 형사처벌 여부를 가를 수 있는 만큼 실체적 진실을 통해 변화를 도출해 낼 가능성도 열려있다. 재판부의 결정 또한 그러해야 한다.

사울 알린스키는 사회 운동가들을 향해 이념이나 도그마의 포로가 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제 내부에서 일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판결에서 한국의 형법 체계에 대한 긴 설명을 덧붙였다. 형법 제303조 위계,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현재 법 체계 내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재판부 고유의 권한이다.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면 자유롭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판결이 이뤄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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