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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회_해시태그]주판알 잘 튕겨야 하는 세상
방효정 변호사·인천회(변호사 방효정법률사무소)  |  lawyer.kirst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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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5호] 승인 2018.09.10  09: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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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를 찾았다. 독립이란 걸 하면서 내 것들을 챙겨나갔지만, 아직도 부모님 삶에 묻어있는 딸의 흔적은 끝도 없다. 창고에 생기없이 내던져진 물건들은 낯설지만 익숙했다. 그 속에서 발견한 OO주산학원 가방과 주판.

국민 학교에 입학하기 전 주산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났다. 금융권에서 일하셨던 아버지는 어린 딸을 유치원이나 미술학원이 아닌 주산학원을 보냈고, 주산대회가 열린다고 하면 무조건 내보냈다. 1988년 주산국가기술자격 시험에 백만명 넘게 응시했다는 점만 보아도 당시 주산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 스펙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꽤 오래 배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사용법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주산 실력 사라진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지만, 문득 ‘주판알 잘 튕겨 보라’는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어떤 일을 할 때 유리한 게 뭔지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보는 일. 흔히 쓰는 표현이다. 변호사들도 합의서 한 장에 금액 결정뿐 아니라 언제 만날거냐 도장부터 찍을거냐 금전부터 줄거냐, 원본은 어떻게 할건지 상대방과 끝도 없는 신경전을 벌인다.

협상이 잘되었느냐는 동료의 물음에 난 우물쭈물이었다. 그러자 동료는, 상대방이 히든 카드처럼 생소한 법조항이라도 들먹이면서 다그치면 ‘나도 너만큼 알아’라는 말투로 반격하라고, 아쉬운 사람이 양보하기 마련이니 혹시 약점이라도 보여서 밀리지 않게 주판알을 잘 튕기라고 했다. 헛웃음을 지으며 그런 재주는 없나보다고 한탄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한때 꽤나 주판알을 잘 튕기던 사람이었다.

화해, 조정사건 위원으로 참여하다보면 ‘적당한 화해’를 위해 우는 아이 달래면서 누가 호구인지 찾는 게임같다는 생각을 한다. 소년사건 화해권고위원으로 참석한 날이었다. 피해자, 가해자, 부모님들까지 면담하는 과정에서 합의의 여지를 발견했다.

그러자 난 양쪽에서 어떻게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지 찾으려 했다. 그래야 조정위원인 나도 합의안을 밀어붙일 주판알을 찾을테니 말이다.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가해자 말은 절반 쯤 흘려버리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피해자 말은 자료 있느냐고 반문했다.

갑자기 위원 한 분이 내게 금전지급 없이 화해할 수 있게 해보자 했지만, 난 치료비만해도 얼마냐며 턱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무렵 피해자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합의금 받지 않겠습니다. 저쪽 집안 형편 알아요. 사과로 됐습니다.” 피해자 부모의 눈빛은 동정적 시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반응하고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수레에 폐지를 담아 끌고가던 노인이 주차된 차량을 파손했을 때, 오히려 해당 차주가 불법주차한 본인 잘못이라고 노인에게 사과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이기려고 들면 상대방이 졌다고 생각해야 끝이 난다. 이리저리 주판알을 튕기면서 상대보다 조금 더 얻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욕망들이 하잘 것 없는지도 모른다.

보상 없는 합의안에 서명을 하면서, 부디 그 선의가 배반당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경쟁 사회에서 진화해 온 수단이 주판알이라면, 측은지심은 내재된 자연적 질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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