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을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얼마 전까지 해도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경우 받게 되는 이른바 ‘정찰제’ 선고형이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한국지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백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수감하고 있는 나라이고, 1950년 이후 약 2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이를 이유로 수감되었으며, 이들이 수감된 시간을 단순히 합치면 최소 3만 6천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난 헌법재판소가 2018년 6월 28일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위헌제청 등’ 사건(2011헌바379 등)에서 아무런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아니한 채 병역의 종류를 현역, 예비역, 보충역 등으로만 제한한 병역법 제5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함으로써 크게 변했다. 처벌규정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서는 이진성, 김이수, 이선애, 유남석 재판관의 일부위헌의견이 있었으나, 위헌정족수인 6인에 미달하여 합헌으로 결론이 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가 “개인의 양심은 사회 다수의 정의관·도덕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문제되는 상황은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법질서와 도덕에 부합하는 사고를 가진 다수가 아니라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다”면서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양심의 자유’의 가치를 되짚고, 기존 태도를 변경하여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 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국제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해 세계인권선언 제18조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18조를 근거로 확립된 권리로 보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더 이상 자유권규약 위반 국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아직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반감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을 메고 군복무를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특히 군필자 입장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너무 개인적인 것은 아닌지, 과연 그 ‘양심’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인지 등의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많은 반감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오해에 따른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신문의 주된 독자인 법조인들은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 제19조의 의미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기본권 행사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 중에는 아직도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면 병역이행은 비양심적인가’라는 식의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는 ‘Conscientious Objection’이라는 영어식 표현을 번역하면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의 ‘양심적(良心的)’이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양심에 따른’ ‘양심을 이유로 한’이라는 의미인데도 ‘비양심적’의 반대말로서 도덕적으로 타당하거나 인간적으로 훌륭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의 본뜻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오해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5조 제1항 헌법불합치결정 전후로 발의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별도의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한 법률제정안 등 앞으로 진행될 생산적인 논의와 그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논란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 등으로 바꾸어 칭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최근 ‘사법농단 사태’로 논란의 중심이 된 대법원은 지난 2018년 8월 30일 14:00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병역을 거부할만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공개변론을 개최했다.

지난 세월 여러 하급심 재판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하고 또 헌법재판소에 병역법 관련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함으로써 헌법재판소가 새로운 결론에 이른 것처럼, 이제 대법원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고법원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함으로써 실추된 명예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때가 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사회에 걸맞은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해 그동안 낭비된 사회적 힘을 쏟아 부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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