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판결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재판부가 “마음 속으로 성관계에 반대하더라도 현행 법체계에선 성범죄라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해서다.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피해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안 전 지사의 성관계 요구에 거부의사를 명확히 표했다. 하지만 법원은 안 전 지사가 비서인 김지은씨 임명권자로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처벌하긴 어렵다고 했다. ‘노 민스 노(No means no)’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룰이 입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판결 이후 정치권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동의 간음죄’ 이른바 ‘안희정법’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 민스 노는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드러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이를 성폭행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스 민스 예스는 한단계 더 나아가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성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행 법제도는 강간·간음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124건의 성폭행 피해 중 현행 강간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는 12.2%인 14건에 불과했다. 피해자가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현행법상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절반(54건, 43.5%)에 달한다.

현행 업무상 위력 간음죄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형법 제303조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반의사 간음’이 아니라 ‘하자(瑕疵) 있는 동의에 의한 간음’의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다. 하자있는 동의는 위계에 의해 기망된 의사이기 때문에 이 역시 범죄가 성립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상호작용은 자발적·적극적 합의와 동의에 기반해야 한다. 폭행·협박이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지 않은 상태더라도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거나 거부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이는 범죄로 볼 수 있다.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하자있는 동의라면 위력을 사용한 쪽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을 당하면 여성탓으로 돌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자가 어떻게 하고 다녔으면”, “니가 먼저 꼬리쳤지” 등 냉소적인 반응들이다. 이런 손가락질을 당할까봐 피해사실을 적극 알리지 못했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당하면서도 이를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피해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사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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