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은 선택형, 사례형, 기록형으로 구성된다. 교육과정에도 모의기록 작성을 비롯한 다양한 실무과목이 개설되고 있다. 기록형을 교육하고 출제하는 취지는 학생들에게 실제 사건에 법리를 적용하는 경험을 하게 하여 법률가로서의 실력을 길러 주려는 데 있다. 필자도 연수생 시절 기록 작성 연습을 통해 파편처럼 머물던 지식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신통한 경험을 한지라, 기록형 연습의 교육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다소 우려스럽다. 변시 합격률이 낮아지면서 기록형 시험에 부담을 크게 느낀 학생들이 근시안적인 판례 암기와 기안 훈련에 경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것이 진정한 실무능력의 함양을 오히려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법전원 졸업생들이 앞으로 작성해야 할 법문서는 실로 다양하다. 판결문, 소장, 준비서면, 변론요지서는 그 중요한 예일 뿐이고, 그 외에도 각종 신청서, 의견서, 보고서, 계약서, 프리젠테이션 자료, 규정안 등등 수행하는 직역에 따라 수없이 다양한 유형의 문서가 있다. 이런 문서 작성을 일일이 교육할 수는 없고, 각자 다양한 직역에 진출하여 그 직역에 특유한 문서작성 방식을 빨리 익힐 수 있는 기초 실력을 다져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어야 한다.

사실 각종 법률문서의 기술적인 작성 방식은 선례를 참조하면 되므로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쟁점을 파악하는 감각, 법적인 추론능력, 의뢰인 혹은 법원 등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한 소통능력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변시에서 기술적인 기안능력, 예컨대 상대방의 잠재적인 항변과 그에 대한 잠재적 재항변 등을 미리 감안한 복잡한 청구취지 작성 능력 같은 것을 평가한다면, 수험생들은 유형별 기재례를 암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3년의 한정된 교과과정이 의도하는 다른 목적을 희생하게 될 것이다. 애써서 복잡한 청구취지를 외워 쓸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그리 대단한 성취인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실제로 일을 할 때는 기재례를 보면서 작성할 텐데!

더구나 변시용 모의기록에는 같은 분량의 실제 사건기록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수의 법리적 쟁점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분쟁 양상과는 매우 다른 “인위적 쟁점과다형”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록의 효율적인 처리 능력은 단기간 훈련으로 일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고, 실제 실무능력으로 직접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지만 중요한 소수의 쟁점을 찬찬히 파고들어야 하는 기록이 진정한 실력 함양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변호사의 실무능력이란 단순히 판례를 맹종하고 기존 기재례를 답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송무변호사라면 때때로 기존 판례와 당해 사건의 차이점을 부각하거나 기존 판례의 부당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해야 하고, 자문변호사라면 의뢰인의 수요에 맞는 새로운 해결책이나 거래구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창의성, 공감능력, 종합적 의사소통 능력 같은 것들이 모두 진정한 실무능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판례와 기재례를 외우는 능력은 가장 먼저 그 가치를 잃을 것이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영미변호사들 이상으로 활개를 치며 성장할 수 있는 우리 청년들을 우리가 너무 많은 판례 지식과 기재례로 질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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