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사를 고소하겠다면서 좀처럼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분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진정시키고 말씀을 들어보니 딸이 암으로 수년간 투병했으나 안타깝게 말기에 이르러 의료진으로부터 호스피스 치료를 권유받고 아울러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안내를 받았던 것으로 보였다. 비통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의사가 어떻게 환자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느냐며 의료진을 고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상담 내내 계속 본인의 감정을 되풀이 토로하다가 가셨으니 상담이 그리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말기에 이른 환자라고 하더라도 환자 본인, 보호자, 의료진이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현실에 대처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말기에 이른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의 전제로 의사의 설명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현실은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말기에 이른 환자는 의사능력이 떨어진 경우도 많고,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며 의료진이 환자에게 말기임을 설명하는 것을 가족이 막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후 6개월여가 지난 2018년 8월 발표된 통계를 보면 시범사업 기간을 포함하여 그간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 등록된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것을 결정하고 이행했다고 보고된 환자는 총 1만4787건인데, 이행을 위해 환자 및 환자가족의 의사를 확인한 방법은 환자가족 전원 합의에 의한 이행이 5417건(36.6%), 연명의료계획서 5027건(34.0%), 환자가족 2인 이상 진술 4241건(28.7%), 사전연명의료의향서 102건(0.7%)으로, 환자가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한 사례는 34.7%에 불과했다.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한 사례가 34.7%에 불과한 현실은 연명의료결정법 자체에 관한 논란을 심화시킨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의료현실을 도외시한 채 의료진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기고 있어 법의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비판하며 절차의 간소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법이 적용범위가 모호하고, 세부기준도 결여되었으며, 악용에 대한 처벌수준이 낮고, 추정·대리 결정에서 이해상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등 문제점을 지적하며 부작용을 우려한다.

우리 사회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으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비로소 법제도적인 접근을 시작하였다고 할 것이다. 제도의 정착까지 많은 혼란과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모든 논의에 앞서 누구도 이 문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각자 자신의 삶에 정합하는 자기결정권의 행사 및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