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송을 하다보면 간혹 임신한 여성이 소송당사자인 경우를 보게 된다. 본인과 아이를 지키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짠한 경우도 있었고, 뭔지 모를 동지애에 사무실 내방 시 푹신한 등받이 의자를 내어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한 단순한 배려였던 것 같다.

이 원고가 신문에 실릴 무렵이면 필자는 38주 만삭의 여름을 보내고 있을 듯 하다. 임신 초기 입과 코에서 동시에 신물이 나오는 진기한 경험을 하면서도 임신 12주 이전 단축근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아예 알지도 못하였다.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단축근무를 할 여건도 아니었는데 재판이 10시부터인데 재판준비를 하려면 적어도 9시에는 출근이 완료되어 있어야 하고, 때론 원거리 법원으로 출근을 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근무하던 사무실에서는 사무실의 첫 임산부를 최대한 배려해 주었지만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변호사인 채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무던하게 넘어가려고 해도 몸이 반응하는 임신증상들은 ‘축복, 숭고한’과는 천보 이상 떨어져 있었고, 그로 인하여 변호사의 품위는 이미 입덧에 잠식당한지 오래였다. 설상가상으로 의뢰인들은 자신의 분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변호사의 교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기어 때론 ‘임신할거면 왜 사건을 맡았냐’는 항의까지 들어야 하였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하나 임신 예정이라 당신 사건을 맡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면 그들의 표정이 어떠하였을까.

게다가 임신 전 이혼소송에서 상대방의뢰인이 필자를 특정하며 했던 ‘저런 여자를 변호하는 너도 아이가 줄줄이 죽어서 나올 년’이라는 저주는 매일 밤 악몽을 머리맡에 두고 가곤 하였는데 필자는 여러 사정을 종합한 뒤 최소피해의 원칙을 준수하여 조용히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퇴사 이후는 더욱 가관이었다.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언제 복귀 할 생각이냐’였고, 두 돌 이전에 복귀할 생각이라고 하면 ‘돈을 우선시 하지 마라, 모성애가 부족하다. 이기적이다’라는 답변이 날카롭게 날아왔다. 그것이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임신=스스로를 지워야하는 것’이 당위와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론 임신 40주는 즐겁고 신기한 경험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임수연을 이미 사직서와 함께 제출해버리고 난 뒤의 엄마 임수연으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이다. 신나게 일하던 나를 다시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 한 켠으로 구겨 던져버린 뒤의 그것 말이다.

그리고 그 구겨진 마음은, 최근 우리 지방회에도 출산 축하금이 있다는 귀뜸을 듣게 된 후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갔다. 남 변호사의 출산에는 출산축하금을 1/2만 제공한다는 우리회 복지사항은 언뜻 보면 타당한 것으로 보이나, 적어도 차별과 구분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적어도 이런 측면에서는 누구보다 선진적이어야 할 변호사들의 모임이(회비는 남녀가 같은 금액을 납부하는데도) 여전히 출산은 여성의 몫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러한 불합리를 보고도 전화기를 들어 저항하기보다 숨어서 글이나 깨작거리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화끈거리는 몸은 아마도 기초체온이 올라가 있는 임산부이기 때문이리라. 새삼 자연주의 출산 결정 이후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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