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기업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 환송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원고들에게 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났습니다. 그에 대하여 일본기업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고, 현재까지도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강제징용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재판거래 정황이 최근 조사와 수사를 통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의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관계(대외비) 문서가 공개되며, 외교부의 부정적인 의견서가 제출된 배경과 법관의 해외 공관 파견을 위하여 재판 지연을 거래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재판이 수년간 지연되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은 것은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입니다. 2000년에 제기한 미쓰비시 사건의 원고들 5분은 모두 돌아가신 상태이고, 2005년에 제기한 신일본제철 사건의 원고들 4분만이 살아생전에 원고 승소 판결 선고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에도 신일본제철 사건의 원고 2분이 돌아가셨고, 이제 두 사건의 생존 피해자는 2분만 계시고 별세하신 7분의 원고들에 대하여는 모두 상속인들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분들이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한 1995년으로부터는 이미 23년이 지났으며, 한국에서 별도로 소송을 제기한 시점으로부터도 무려 18년이 지났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노무동원으로 연인원 755만4764명(중복 동원 포함) 이상의 조선인들이 동원되었으며, 이러한 조선인 노무자는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재해, 계약위반, 인신구속, 과도한 폭력, 임금 미지급 등의 부조리한 처우에 내몰렸습니다. 군인군속동원으로는 1945년 8월까지 20만 9000명을 동원되었으며, 일본군위안부는 학계에서 최소 3만명에서 최대 20만명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고, 여자근로정신대로도 5만명에서 7만명 정도가 동원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분들 중 생존자는 3500명 정도(2018년 8월 기준)뿐이고, 대부분 90세 안팎의 고령입니다.

이러한 강제동원피해자분들에 대하여는 적정한 배상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소송 등을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행사조차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도 상당수입니다. 또한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강제동원 당시 어떠한 기업에서 일을 하였는지가 불분명하거나 여러 기업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강제동원피해자 분들이 피고 기업에서 일을 하였다는 처분문서 등의 증거자료를 확보할 수 없어, 피고들로부터 ‘우리 회사에서 당신이 일한 적은 없었다’는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또한 해외 송달이 진행되는 소송의 경우 송달에 걸리는 시간이 6개월 정도 걸리는 점을 악용하여, 사소한 번역 오류 [‘변론기일 통지서 중 일부(주차장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구)가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소장 송달을 거절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시 해외 송달절차를 진행하여 소송이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청와대, 법원행정처, 외교부 등이 모여 이러한 해외 송달을 핑계로 심리불속행 기간을 넘기는 방안을 전략적으로 논의했다는 내용까지 알려져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은 주로 10대에 피해를 받으신 분들이기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분들 중에 가장 낮은 연령대인데도 현재는 대부분 80대 후반 정도이십니다. 이와 같이 강제동원 사건의 재판결과를 기다리시는 강제동원 피해자 당사자분들께서 앞으로 몇날, 몇달을 더 살아계실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법률적 쟁점이 지난번 대법원 판결과 동일함에도 피고 일본 기업의 상고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르도록 대법원은 아무런 판결을 내리지 않은 채 고의적으로 재판을 지연시켰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강제징용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갑자기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였습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서 올해 하반기에는 최종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있기도 합니다만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기 위하여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성명서도 제출하였을 뿐 아니라, 법원에 의견서를 직접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와 일본변호사연합회 일한변호사회 전후처리문제보상공동특별부회는 2010년부터 일제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권리구제가 대법원의 재판 지연이라는 꼼수에 묶여 있지 않도록 조속히 판결 선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제피해자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린 대법원의 농단에 대한 진상이 모두 규명되어 다시는 이러한 비열한 농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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