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에 위치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20대 초반의 한 대학생(이하 ‘원고’)은 뇌병변 1급 장애가 있어 전동휠체어를 이용해야 한다. 원고는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며 매 주말 서울을 오갔고, 그 때마다 학교에서 평택역 사이는 버스를, 평택역에서 서울역 사이는 기차를 이용하였다.

그런데 원고가 버스를 타려 하면, 버스 기사들은 “휠체어 승강설비가 고장났다” “휠체어 승강설비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며 승차 거부를 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원고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의가 전부였고, 이마저 버스가 원고를 버려둔 채 출발해 버리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이에 원고는 2016년 3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휠체어 승강설비 고장, 휠체어 승강설비 사용법 부지, 무정차 통과 등의 이유로 승차거부를 하는 버스와 버스 기사의 모습을 촬영하고,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산하 장애인인권소위의 지원을 받아 3개 버스회사와 평택시를 상대로 소송(평택지원 2016가단45804)을 제기하였다. 소송 결과, 제1심 법원은 버스회사들에 대하여는 원고 승소, 평택시에 대해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2016년 10월 7일, 이 사건의 제1심 제1회 변론기일에 필자를 매우 당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재판에 출석한 원고는 재판을 마치고 나온 후 필자와 얘기를 나눈 다음, 평택지원 맞은 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하였다. 그런데 버스기사는 전동휠체어에 탄 원고를 보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원고를 태우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 승차거부를 당한 문제로 소제기를 하였는데, 그 재판이 열린 법원 앞에서 승차거부를 당한 것이다.

필자는 그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원고를 보며 20대 초반에 불과한 이 어린 친구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될 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위로를 해야 할지, 격려를 해야 할지 도무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뭐라도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필자는 원고에게 버스 기사를 비난하면서 “다음 버스가 빨리 와야될텐데…”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 어린 친구는 필자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변호사님, 전 괜찮아요. 비 오니까 먼저 가세요. 같이 안 기다려주셔도 돼요”라며 어눌한 목소리로 말하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이 친구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지난 20여 년간 얼마나 많은 거절과 차별을 당해왔을지, 그로 인해 그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들이 남아있을지, 또 지난 2년간 거의 매주 경험했던 승차거부가 이 친구의 마음을 얼마나 낙심시켰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배척과 차별을 당해야 했고, 그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느껴졌다.

이후 이 사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승차거부는 늘 그렇듯이 반복되었다. 제1심 판결이 선고되어 버스회사들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저상버스에 부착된 휠체어 승강설비는 고장나 있기 일쑤였고, 사용방법을 모르는 버스기사도 늘 있었으며, 원고의 항의도 늘 반복되었다. 60여년 전 미국의 로사 파크스 여사는 제한 없이 버스에라도 오를 수 있었지만, 원고에게는 버스에 오를 기회조차 제한이 되고 있던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는 ‘교통행정기관과 교통사업자는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교통행정기관과 교통사업자는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는 바로 이 규정을 근거로 소송하여 승소하였지만, 원고가 겪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필자는 가끔 장애인차별금지법 혹은 장애인학대에 관한 강의를 한다. 그때마다 항상 모두에게 꺼내는 얘기가 우리나라 인구의 5~6%가 장애인이고, 그 중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또 장애인 연령별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장애인 비율이 40대부터 크게 높아져서, 50대에 최고점을 찍고 70대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것은 ‘장애인’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교통사업자인 버스운송회사 임직원, 버스기사들, 그리고 감독기관인 지방자치단체의 담당 공무원이 장애와 장애인이 자신 및 자신의 가족과 무관하다 생각지 않았다면, 아마도 원고는 그토록 승차거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이 사건 제1심과 제2심을 담당한 법관들이 장애와 장애인이 자신 및 자신의 가족과 무관하다 생각지 않았다면, 판결문을 쓰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실효성이 없는 선언적 규정인양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 판결의 결론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원고는 대학 졸업 후, 현재 장애인인권단체에 몸 담아 장애인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인권활동가라는 직업도 좋지만, 만약 이 친구가 위와 같은 승차거부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다른 길로 나아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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