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도 못 사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꿈 같은 시간, 바로 요새죠. 각급 법원의 휴정기 말인데요.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해 여러 법원이 지난달 30일부터 10일까지 휴정기로 재판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진행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법조계가 함께 쉴 수 있는 여름 휴가인 셈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놀 순 없습니다. 각자 미뤄뒀던 사건 기록을 꺼내거나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쁘실 텐데요. 그래도 주말쯤엔 시간을 내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어떨까요. 이 때 아니면 쉴 수 없는 기간에 정말 쉬어주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영 법과 상관없는 영화는 안 되겠죠? 그래서 추천합니다.

2017년 4월26일 개봉한 ‘나는 부정한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정은 아니지만 영국 법정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영국에서 4년 동안 벌어진 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법정에서 다뤄지는 진실 공방에 집중합니다. 재판 과정을 생생하게 다루며 이 밖에 큰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법정에서 벌어지는 진술들과 증인심문, 재판 결과가 밝혀질 때까지의 과정이 긴장감 있게 진행됩니다.

데이빗 어빙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인하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를 고소하게 되죠. 립스타트 교수가 쓴 책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립스타트 교수는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해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에 참여하게 되죠.

영국 법정에서 어빙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을 증명할 책임은 고소를 당한 립스타트 측에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있었고, 그것을 어빙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왜곡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떨어진 겁니다. 이를 위해 립스타트의 변호인 측은 감정이 아닌 이성에 집중하기로 결정합니다. 일부러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관계자나 생존자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지 않고, 배심원들을 참여시키지 않도록 하는 재판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우리나라와 영국의 변호사 제도가 다른 것이 눈에 띄는데요. 영국은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의 역할이 구분돼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변론을 하는 변호사와 서류 관련 업무나 법률 자문 등을 행하는 변호사가 나누어져 있는 것이죠. 실제 재판의 결과는 여기에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진실’이란 무엇인지 그 울림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직접 영화를 본 후 심장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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