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변호사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장황하게 구두변론을 펼치는 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잘하는 달변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사자와의 상담을 제외하면 실제 변호사 업무의 태반이 서면작성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달변가’보다는 ‘글쟁이’에 가깝지 않을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처럼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릴 수도 있고, 화자의 목소리, 어투, 감정에 따라 청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글은 글자만으로는 감정을 충분히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요즘엔 각종 이모티콘이 어투와 감정을 보충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서면은 글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변호인은 ‘글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자 소질에 따라 말하기와 글쓰기 중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복잡다단한 일상적 사실관계는 법적 관점에 부합하게 간결하고도 논리적으로 변환하여야 하고, 당사자의 억울함과 선처를 호소할 때에는 무미건조한 글자들 안에 감정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일이 말로 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피고인들에게는 부지런히 반성문을 적어 내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피고인들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지 열통 중에 여덟통을 똑같은 내용으로 ‘복붙’하여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괜찮다면 제출하기 전에 보여달라고 하는데 보통 피고인들이 쓰는 반성문은 도긴개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구속사건의 피고인이 검토해달라며 보여준 반성문에서 진심이 담긴 글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동종범죄경력이 10회가 넘는 마약사범인 피고인은 오랜 투약으로 병을 얻어 투병 중에 고통을 잊고자 숨겨두었던 필로폰을 다시 투약하였다. 죄책감에 곧바로 자수하였으나 구속되지 않고 수사를 기다리던 중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피고인이 판사님께 적어낸 반성문에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에 대한 회고와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 늙은 노모에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이 담담히 적혀있었다. 피고인의 후회는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인간다운 삶에 대한 동경과 그 기회를 놓쳐버린 자신에 대한 책망이 뒤섞인 진심 어린 회한이었고, 반성문에는 이런 진심이 여실히 적혀있었다.

어쩌면 위 피고인이 글에 소질이 있어 반성문을 잘 적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천편일률적인 문구라 하더라도 진심이 담겨진 글은 글자를 넘어 와닿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변호인으로서 적어낸 나의 글은 그동안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았던가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모든 사건에 마음을 기울이려 노력하고 경우에 따라 감정을 소거한 객관적인 글을 써야하는 것도 맞지만, 때로는 업무에 지쳐 일로써만 글을 쓴 것은 아닌지.

갈수록 서면작성이 익숙해지는 것도 같지만 여전히 훌륭한 글쟁이가 되는 일은 어렵다. 매끄러운 글을 쓰는 것만도 어려운데 진심을 담은 글을 쓰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위의 반성문을 생각할 때마다 적어도 당사자의 진심만큼은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글을 쓰려 노력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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