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 전 대법관 여수시 시군판사 지원에 시니어 법관제 도입 논의 ‘활발’
현실성 부족한 원로법관제 … 美 시니어 판사가 지방법원 사건 24.9% 처리

박보영 전 대법관이 시군법원 판사 임용을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서도 시니어 법관제 도입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는 그간 미국식 시니어 법관제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 왔다. 전관비리 혁파를 위해서다. 박보영 전 대법관이 지난 17일 여수시에서 시군판사로 임용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이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김현 협회장은 “박보영 전 대법관이 큰 결단을 내렸다”면서 “법원행정처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대법관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니어 법관 탄생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법관 인사규칙 개정 후 ‘원로법관제도’를 도입했으나 아직 대법관이 원로법관으로 활동한 사례는 없다. 법관 인사규칙에 따라, 대법원장은 법조경력 30년 이상인 판사 중 원로법관을 지명할 수 있다. 현재는 전 서울고법원장과 전 사법연수원장 등 5명이 시군법원에서 소액재판을 맡고 있다.

원로법관제(평생법관제)는 현실성이 부족한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임기 6년을 마친 대법관이 대부분 50대 중후반인데, 정년이 65세인 원로법관제는 재직할 수 있는 기간이 몇년에 불과하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퇴임 당시 58세, 안대희 전 대법관 57세, 전수안 전 대법관 59세였다. 처우 또한 1심 법원 판사와 동일한데 업무는 상대적으로 과중하다.

개선책으로 각광받고 있는 방안은 미국식 시니어 법관제 도입이다. 김현 협회장은 “퇴직 법관이 비상근으로 재판 업무를 보조하며 약 70%의 급여를 받는 미국식 시니어 법관제가 도입되면 전관비리를 혁파하고 국민에게 신속하게 고품질 재판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취임 전부터 꾸준히 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다.

서초동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주변에서도 시니어 법관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미국처럼 시니어 법관제가 활성화되면 법관 업무량도 상당 부분 경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전원 교수도 “시니어 법관제 도입이 오랜 경력의 판검사들이 쌓은 경험과 지혜를 사장하지 않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전관예우 근절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은효 변호사(경기중앙회군법무 6회) 역시 “시니어 법관제가 도입되면 이와 같은 일이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공직에서 권력을 사유화하는 모순을 방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미국은 시니어 법관제를 1919년부터 시행해 왔다. 판사가 65세가 되면 퇴직하거나 시니어 법관으로서 업무를 할 수 있다. 단, 15년 판사 경력이 있는 사람만 시니어 법관으로 활동이 가능하다. 시니어 법관은 일반적으로 연방법원 전체 업무량의 25% 가량을 처리하고 있다.

시니어 법관이 맡는 업무량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미국 지방법원에서 시니어 법관이 민형사 사건을 처리한 비율은 2006년 17%에서 2014년 24.9%로 크게 늘었다. 특히 미국 켄터키 주에서는 2014년 선고된 사건 1385건 중 시니어 판사가 처리한 사건이 1040건으로 75.1%에 달했다. 버몬트 주에서도 시니어 법관이 394건 중 251건(63.7%)을 처리했다.

시니어 법관 수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연방사법센터에 따르면, 시니어 법관은 매년 30명 이상 늘어나는 추세다. 2013년에는 미국 지방법원 판사 중 41명이 시니어 법관으로서 활동을 선택하기도 했다. 미국 지방법원 판사 중 시니어 법관 수는 2006년 311명에서 2014년 386명으로 증가했다.

변협은 전관비리 척결을 위해 최고위직 전관에게 변호사 개업 자제를 권고해오기도 했다. 그간 노력의 결과로 박영선 의원이 최고위직 전관이 변호사 등록을 2년간 하지 못 하게 하는 내용으로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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