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이 되면, 제헌절을 기념한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스스로 제정한 헌법을 기리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은 제헌절 기념식이 별로 달갑지 않다. 헌법 이하 법을 존중하라는 준법정신 고취 연설이 반복되는데, 헌법 준수 천명이, 국민의 주권성을 드높이는 것이라면 반갑겠지만, 국가권력에 대한 “수동적 종속성”을 은근히 강조하는 것이겠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헌법현실은 국가권력이 주권자 국민으로 나오는 “형식”만 갖추면 되는 형국이다. 국민이 입법부 국회의원들, 정부의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였으니, 그들이 행사하는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철이 지나면, 국가권력은 그들의 것이고, 국민은 국가권력자의 ‘들러리’이고, 국가질서의 예속물일 뿐이다.

그 이유는, 국가권력 행사가 국민의 뜻에 맞지 않을 때,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헌법제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권이 중요하나, 부족할 뿐이다. 형편없는 정치인들을 갈아치우기 위해 4년,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청원권은 말 그대로 “희망을 신청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권력자들이 청원을 무시하더라도 국민은 뾰족한 수가 없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서, 국민이 국가권력자와 그 권력 행사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많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외치더라도, 대부분 ‘쇠귀에 경 읽기’이다. 우리 헌법은 주권자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들을 적극적으로 통제하여, 국정에 자신의 뜻을 반영·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근본적 흠결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통령은 독재자로 변신했고, 국회의원들은 정권쟁취와 유지에만 관심을 두었고, 사법부 법관들은 전관예우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관행화했다. 국민은 주권자, 주인, 주체가 아니라, 피지배자, 통치대상으로 취급되었다.

주권자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국가권력상태가 자행되는 것이 명백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혁명을 수행했다. 기존 헌법질서를 바꿔서 국민이 “주권자”로서 지위를 갖춰달라고 요구했다. 1960년 4·19민주혁명, 19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혁명이 그것이다. 1960년 4·19혁명은 이듬해 일어난 5·16군사쿠데타로 미완에 그쳤고, 1987년 6월 항쟁은 당시 국민이 원하는 ‘직선제 대통령제’ 개헌을 성취하였으나, 이는 간접민주제에 대한 보완일 뿐이어서, 선거이후 국민이 들러리로 남아있기는 여전하였다.

현재 진행되는 촛불혁명의 과제는 명백하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국정운영의 주재자로서의 지위를 놓치지 않는 헌법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국가권력자들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나, 주권자 국민이 그 행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국민은 국가의 최고의사를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히든카드”를 쥐고 있어야 한다. 국가의사는 ‘헌법-법률–명령·규칙–처분’의 상하관계의 구조를 가지므로, 이들 중 ‘헌법’과 ‘법률’을 국민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면, 국민은 피지배자, 통치대상의 지위를 벗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회가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OOO법률’을 제정한 경우, 국민은 “OOO법률을 폐지한다”라는 1개 조문으로 된 법률안을 발안한 뒤, 국민투표로 의결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요컨대,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발안 및 국민투표제도, 법률에 대한 국민발안 및 국민투표제도는 국민이 주권성을 회복하는 요체이다.

아쉬운 점은, 최근 진행되는 개헌 논의가 구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대의민주제라는 이름 아래 주권자 국민을 ‘들러리’로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누려왔던 정치인들의 권력독점을 국민에게 선뜻 내놓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직접민주제의 도입을 회피하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에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개헌 논의에서도, 2018년 3월 26일 제안한 정부의 개헌안에서도 국민발안 및 국민투표제도의 도입은 사실상 거부되었다. 국민이 직접 국정에 나서면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혁명마저도 평화롭게” 수행한 우리 국민 앞에서 말할 수 있는 변명은 아니라고 본다.

2018년 2월 발표한 대한변호사협회 개헌안은 국민발안과 국민투표제에 관한 좋은 예시이다.

제52조 ①국회의원선거권자 100분의 3이상, 국회의원 또는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②국회의원선거권자 100분의 3이상이 발의한 법률안은 제출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의결하여야 한다.

③전항의 경우 국회가 위 기간 내에 의결하지 아니하거나 부결 또는 수정의결하면 18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선거권자 4분의 1이상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법률로 확정된다. 다만 국회가 수정의결한 경우 국회의원선거권자 100분의 3이상이 제안한 법률안과 수정의결안을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제128조 ①헌법개정은 국회의원선거권자 100분의5 이상,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제130조 ①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다만, 국회의원선거권자 100분의 5이상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②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위와 같은 헌법개정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제헌절마다 천명되는 헌법준수 연설이 주권자 국민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선언이 될 날이 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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