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변협포럼(강사: 정호승 시인)

대한변협 주최 제58회 변협포럼이 지난 16일 오후 7시 대한변협회관 18층 중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은 정호승 시인이 ‘사랑과 고통의 본질과 이해’를 주제로 강연했다.

정호승 시인은 1973년 시 ‘첨성대’로 등단한 이후 우리에게 삶의 용기, 희망과 사랑을 전달해 온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저서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여행’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 다수 상을 수상했다.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 영혼이 담긴 내면의 눈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위와 같은 생각이 나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가?’ ‘앞으로 남은 생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것인가?’를 자문하게 됐다고 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산다는 이유로 소유만을 중시한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됐다”라고 고백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이라는 가치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돈보다도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이것을 잃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2013년 발표한 시 ‘여행’을 낭독한 후 강연을 지속했다.

“좁쌀 만한 지구 안에서 우리는 어디를 여행하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시 ‘여행’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와 설산뿐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이와 같다는 점을 설명한 후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전달했다.

“삶이라는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죽음이라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여행도 즐겁고 기쁘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라는 여행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여행을 잘하는 방법은 사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돈이 많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이룬 사람을 보고 ‘성공했다’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가장으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생을 우리가 쉽게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생에서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돈을 조금 못 벌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사랑을 찾았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으로 완성되는 걸까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답이 떠오를 겁니다. 바로 희생, 책임, 무조건성과 무한성이 그것입니다.

사랑의 또 다른 조건은 용서입니다. 자신이 미워하던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에 대한 용서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죽어도 그에 대한 미움은 남아 자신을 괴롭힙니다.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입니다.”

“용서는 어려운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가슴에 총알이 박혀 있는 것과 같다’와 같은 글을 읽고도 ‘차라리 총알을 몸에 지닌 채 죽고 말지’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를 못하는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용서’라는 문제로 고통을 겪고는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현재를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용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렘브란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돌아온 탕자를 들었다. 작품 속 아들을 용서하며 감싸는 아버지의 손을 보면 양 손의 두께와 길이가 서로 다르다. 아버지의 양 손은 각각 부드러운 모성의 손과 거칠지만 담담한 부성의 손으로 해석된다.

“두 손이 서로 다른 이유는 ‘모성에 기반한 절대적 사랑을 통하지 않고서는 용서를 할 수 없다’라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모성의 절대적 사랑을 통해서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네덜란드의 신부이자 작가였던 헨리 나우웬은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관계의 속성은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증오와 사랑 중 증오를 많이 선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후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상대방의 선택이 어떻든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임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고통의 가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원하지만 고통은 원하지 않는데, 이는 배가 고플 때 빈 식탁에서 음식을 먹기 바라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제껏 우리가 만든 인생이라는 빵을 먹고 살아왔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과 고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랑과 고통은 반의어가 아니라 동의어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고통은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상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강연은 청중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며 마무리됐다. 강연이 모두 종료된 이후에도 많은 회원들이 가져온 시집에 사인을 받고, 사진을 함께 찍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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