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부터 5일까지 독일 콘슈탄츠(Konstanz)에서 개최된 3개국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 콘슈탄츠에 와서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발표한 주제는 위헌선언된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것이였다.  


주제발표를 하기 위하여 ‘사법적 불법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라고 하는 책도 입수해 놓고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마르텐 브로이어(Marten Breuer) 교수를 독일 측 상대발표자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고 또 기뻤다. 이번 토론에서 앞으로 더욱 검토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몇 가지 쟁점을 지적해 본다.


대법원의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배상기각판결의 핵심은 긴급조치를 발령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야기할 만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판례는 입법적 불법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인한 독일 연방법원의 판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독일 연방법원의 이 판례는 독일 기본법 제34조와 민법 제839조의 해석론으로 전개된 것인데, 독일에서는 “제3자와 관련된 직무의무위반”이라고 하는 요건이 국가배상책임인정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될는지 몰라도, 우리의 경우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이다.


헌법은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이라고 하는 요건을 제시하고 있을 뿐인데 반해, 법률은 공무원의 고의·과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사례의 경우 이러한 공무원의 책임요건의 지나친 강조가 당사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는 명문화돼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볼 때, 독일 기본법 제34조와 독일 민법 제839조의 해석상 도출된 소위 “제3자와 관련된 직무의무위반”이라고 하는 요건을 사실상 요구하는 대법원이 우리 실정법해석의 한계를 유월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국가배상청구권을 지나치게 축소한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다.


이번에 나는 유럽연합 지침을 이행하지 않거나 잘못 이행한 회원국에 대해서 입법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유럽사법재판소 판례의 영향으로 인해 유럽 각국 최고재판소의 입법적 불법에 대한 배상책임인정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정법적 근거도 없이 시대에 뒤떨어진 외국판례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하는 판결은 정당화될 수 없다.


무조건 입법적 불법을 부인하는 사법부의 태도가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서 나와 같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브로이어(Breuer) 교수의 견해를 확인하면서, 긴급조치에 대해서 그 위헌을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긴급조치 위반을 이유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던 당사자에 대한 재심도 허용을 한 대법원이, 그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기각할 수 있었던 법논리에 과연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 더욱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법원의 판결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헌법과 법률에 대한 치밀하고도 논리적이며 동시에 국민 대다수의 법감정에 부합할 수 있는 정의로운 해석이 아니면 결코 그 판결은 정당성이 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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