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약한 여성에게 책임을 다 물어서야 되겠습니까?”

최근 취재한 국민참여재판의 최후 변론을 듣다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배심원들에게 더욱 감정적으로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피고인에게는 왠지 ‘여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10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폭력·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그의 직책과 혐의에 ‘여성’이라는 이유는 낄 수가 없어 보였다. 20분가량 이어진 피고인의 최후 진술은 배심원 8명(예비 배심원 1명 포함)을 향한 호소가 아니라 마치 광장에서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 같이 힘이 느껴졌다.

그는 80만여명의 조합원들을 이끌었던 노동단체의 사무총장이었다. 첫 여성 사무총장이었지만 그가 여성이어서 됐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법정에서 다뤄진 사건에선 그가 여성이라 벌어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틀간의 참여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쟁점들을 첨예하게 다투며 법리 공방을 벌였는데, 마지막에 갑자기 “쇠파이프를 휘두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그 책임은 여기 있는 여성에게 다 갔다. 그 조직은 창피해야 한다”는 변론이 나온 것이다.

법정에서 여성 피고인들을 여전히 소수에 그친다. 지난해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한해 동안 형사재판을 받은 피고인 전체 38만8649명 가운데 여성은 4만7695명(12.3%)에 불과했다. 그나마 중요재판으로 분류된 국정농단 사건 등을 통해 여성 피고인들을 접할 기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대하는 법정의 공기는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여성’ 운운이 본격적으로 거슬린 건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비롯됐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무렵 변호인의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재판 중에도 변호인들을 통해 “연약한 여성이고 고령이어서 주4회 재판이 힘들다” “미혼이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토로가 나왔다. 2012년 대선에서 전략적으로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했고, 그의 정치여정에 여성이라 도움이 된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권한을 남용한 잘못된 대통령이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성별을 강조하는 게 판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연약한 남성”이라는 식의 호소는 본 적이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등의 역할을 강조하지, 남성 그 자체를 참작사유로는 꺼내지 않는다. 피고인이, 그것도 대통령과 노동조합단체 사무총장을 지낸 힘 있던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가 왜 봐줘야 하는 사유가 되는 것인지, 꼭 법정에서 뿐 아니라 아직도 곳곳에서 여성을 보는 시각이 담긴 것 같아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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