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변협포럼(강사: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

대한변협 주최 제57회 변협포럼이 지난 19일 오후 7시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이 변협을 찾아 ‘외상센터 설립과정’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 복합중증외상치료의 권위자다. 기존에 일반 국민이 잘 알지 못했던 중증외상이라는 분야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이 통과되는 데에도 그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

이 밖에도 중증외상환자 생존율을 기존 0~5%에서 30~40%까지 끌어올린 손상통제수술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2009·2010년 백악관 감사장, 2011년 대통령 국민 포장 등 다수의 상을 받은 ‘국민 의사’다.

“중증외상환자 명단을 보면 대다수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그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입니다.”

이국종 교수는 한겨레21 제842호에 실린 ‘사고사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를 토대로 위와 같이 말하며 사회안전망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에 의한 환자는 중증외상환자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도서지역 주민도 질병에 걸리면 대형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중증외상환자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지역마다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국종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의 주요 사망원인을 제시했다. 자료에 따르면 외상으로 인한 사망은 암과 심혈관질환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는 암 환자의 3분의 1 정도 수준의 사회 기층민이 다쳐서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에게는 돈도 ‘빽’도 없습니다. 그들이 일반 병원에 가게 되면 결국 내쳐지게 됩니다.” 이 교수의 말에는 씁쓸함이 묻어났다.

“미국에서 시스템을 배워 와 2004년 중증외상센터 설립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음에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센터를 설립하기까지 겪은 내·외부적인 압박과 뒷담화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교수의 노력으로 2009년 정부는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원을 투자해 외상센터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2년 후 계획이 변경되며 예산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2012년에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폐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이 교수와 대한응급의학회가 이에 강력히 반발해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 국회는 결국 이를 통과시켰다. 그렇게 2012년 11월 1일, 정부가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상 5개 기관을 선정하며 한국 최초의 권역외상센터가 탄생하게 됐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당초 계획과 다르게 17개 센터로 늘리면서 예산은 증액되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응급의료기금을 따오고 언론에서 예산 200억원이 추가됐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습니다. 예산이 나와도 가져가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닥터 헬기와 병원 간 정보 전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전기를 달라고 한 지 7년이 넘었는데 아무리 높은 분에게 요청해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보험수가는 터무니없이 낮아서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살려낼수록 적자는 늘어납니다.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2009년 3월부터 1년간 8억5000여만원에 이르는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대형병원들은 병원 건물에 스테인리스 글라스, 대리석을 깔게 아니라 인력을 확충하고 장비를 추가해야 하지만 병원도 돈이 되지 않는 일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국종 교수는 인력 부족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중증외상센터 인력도 매우 부족해 그 규모는 미국, 영국, 일본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간호사 한명당 평균 환자 1.1명을 관리하는 외국과 달리 국내 병원은 아무리 좋아도 2명 이상입니다. 대학·대형병원도 간호사 1명이 4명 이상을 관리해야 하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영국, 일본 일반병동은 간호사 1명이 6명을 관리하지만 우리나라는 최소 15명 이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원과 인력을 떠나 국가사회가 응급 외상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것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한국 사회의 의식 또한 중증외상센터 운영과 응급의료에 또 다른 어려움이라는 점을 토로했다.

“전국 소방서 가운데 최초로 헬기장이 건설된 도봉소방서 헬기장은 인근 주민들이 제기하는 민원과 불의의 사고로 진급에 불똥이 튀게 될까 걱정하는 일부 소방관계자로 인해 일년에 반 이상 사용할 수 없고, 접근성도 떨어지는 중랑천 천변으로 강제 이전됐습니다. 아주대학교병원도 마찬가지로 인근 주민으로부터 소음 관련 민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응급의료헬기가 주거지 밀집 지역 도로와 공원에도 착륙해 중증외상환자를 이송하는 해외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국민을 살리겠다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국종 교수는 실제 공문을 보여주며 “병원에 이런 소음 관련 민원까지 전달해 ‘헬기 이착륙 시 소음을 내지 말라’는 국가나 지자체 공무원에게서도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중증외상센터는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응급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증외상센터는 일반 응급실과의 차별성을 잃어 결국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국종 교수는 마지막까지 중증외상센터의 실효성 있는 운영을 위한 제도적 개선과 예산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 서울 지역에서 유일하게 중증외상센터를 갖춘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에는 옥상에 헬기장이 있음에도 비행금지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헬리콥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외상센터 운영에 관한 규정부터 확실하게 정리해 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힘이 닿는 데까지는 응급의료에 관한 국제 표준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의료진이 현장에 빠르게 도달, 이송해서 골든아워 내에 수술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이국종 교수는 위 발언을 끝으로 이날 강연을 모두 마무리 했다. 강연 종료 이후에도 활발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차기 변협포럼은 내달 16일 오후 7시 대한변협회관 18층 중회의실에서 개최된다. 참가 신청 등 자세한 내용은 추후 대한변협신문과 공문 등으로 공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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