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법정에 있습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의 도쿄지방법원 담당 기자들이 쓴 연재 기사를 한 데 모은 책입니다. 대형사건 취재로 법조 기자들이 바쁜 건 일본도 우리와 똑같지만, 아사히신문 기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재판에 주목했습니다. 아픈 딸을 위해 장어 구이팩을 훔친 아버지, 폭력단의 사주로 각성제를 해외 밀반입한 할머니…. 기자들은 방청석에 앉아 법정 풍경을 담담히 전했고 일본 사회에 잔잔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100명이 조금 안됩니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 사건, 재벌 총수의 비리 사건 같은 재판들만 챙겨도 기자들의 몸은 모자라지요. 재판 뿐 아니라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처럼 갑자기 터지는 일들도 법원 출입 기자들의 몫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형사건 재판에는 기자석이 늘 따로 배정돼 있고, '법알못'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쉽게 설명해주는 공보관이나 공보 판사가 있다는 점이지요. 법원 사무국은 금요일마다 기자들에게 중요 사건 일람표를 보내 매주 주목해야 할 재판을 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재판이 법원이 정한 ‘중요 사건’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진 않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에 접수되는 사건만 1년에 185만건에 육박합니다(2017년 사법연감). 기자들이 주목하는 사건은 여기에 0.01%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99.99%의 사건에 공정하고 친절한 판사들과 두 눈 부릅 뜬 기자들이 항상 있는 건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법정은 일반 국민들에게 냉혹하기만 한 곳입니다. “황혼 이혼을 신청한 70대 여성에게 ‘그렇게 사니 행복하냐’고 비꼬듯 말한 판사가 있었습니다(2017년 대한변협 판사평가 사례집).”

힘없는 사람의 재판도 유명 정치인과 기업인의 재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일까요. 중요 사건과 일반 사건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판결에 따라 정치권 명운이 갈리고, 사법부를 향한 여론과 맞닿은 사건만 ‘중요’란 수식어를 붙일 자격이 있는 걸까요. 그렇게 탄생한 중요 사건들이 정권과 사법부의 ‘재판 거래’ 리스트에 오른 건 아닌지요. 더욱 안타까운 건 중요 사건 몇 가지조차 언론이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든다는 겁니다.

사법부의 부조리는 중요 사건 일람표에 없는, 노트북을 든 기자가 들어올 일이 없는 재판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파도를 막을 힘이 없다면 작은 물방울이라도 튀지 않게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도쿄지법 법조출입기자단 간사였던 노무라 슈 기자는 이렇게 적습니다. “언론이 기사로 다루지 못한 ‘작은 사건’의 재판에야말로 우리 기자들의 시선이 향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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