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의 일로만 느껴지던 미투 운동이, 한 여검사의 과감한 폭로를 시작으로 광풍처럼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국선전담변호사 5년, 피해자 국선변호사 5년 동안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을 다루어온 나의 문제의식은 미투 운동과 분명 달랐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나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더 이상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는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공표되는 일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단지 거부감이라는 내심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신체적 접촉을 성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 여부의 경계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문제임에도 패널로 참석한 시민단체 대표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했고, 검찰의 수사 결과가 자신들의 주장과 맞지 않으면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강제추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폭행이라는 구성요건이 별도로 요구되지 않게 됨에 따라 같은 행위가 두 사람의 관계와 상황, 그들의 내심의 의사에 따라 스킨십이 될 수도 있고, 성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법원에서 부부강간도 처벌하고 있고 데이트 폭력도 인정되고 있어 두 사람의 관계도 신체적 접촉이 있는 당시의 관계로 협소하게 해석됨에 따라 더욱더 그 판단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양 당사자의 진술 외에 별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 일방의 주장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훅 날아가 버리는 지금의 세태가 내 눈에는 너무나 위태롭고, 그 성폭력에 대한 판단이 너무나 선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성폭력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뿐인 것이지….

한 연예인의 경우 아주 옛날 너무나 무명이어서 한 줌의 권력도 없었던 그때 있었던 성폭력 사건으로 현재를 잃었다. 그 사건은 공소시효도 지나 수사기관에서도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이제는 영원히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남은 것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뿐. 너무나 유명했기에 그는 대한민국에서 일반인으로 살아가기도 힘들 것이다. 과연 성폭력 사건이 그 정도로 나쁜 죄였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성폭력 사건만큼 스펙트럼이 넒은 범죄도 없다. 피해의 정도나 피해자의 내심의 의사, 피해의식 등 판단 기준들이 너무나 많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중년 남자가 예닐곱살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 준 일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CCTV로 촬영된 장면이 있어 증거 또한 명백했고,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아이가 받은 충격을 성적 수치심으로 볼 수 있을까.

그 반면에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은 또 다른 극단에 서 있다. 그 장애인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성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어떨 때는 성폭력을 당하고도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는 일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내심의 의사에 따라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변호사 11년차인 나에게 성폭력 사건은 너무나 어렵다. 어떨 땐 너무나 가벼워서, 어떨 땐 너무나 무겁고 가슴 아파서, 어떨 땐 너무나 애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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