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자격사를 논할 때면, 직접 경험한 사례를 자주 인용한다. 의료서비스에 관한 것으로, 그 하나는 ‘무관심’형이다. 10여년 전 흉통으로 마을의원에 이어 2차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서너 시간 대기와 비싼 진료비를 감당하며 갖은 최첨단 촬영까지 진행했고 수일 후 검사결과를 보러 갔다. “별 이상이 없는 듯 한데 아직도 왼쪽이 아프세요”라며 진료교수가 물었다. “교수님, 저는 오른쪽이 아프다고 했는데요…. 2차 진료소견서에도 그렇게 써 있고요.”

두 번째는 ‘무례’형이다. 4년 전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한 지인의 갑작스런 열병으로 동네의원에 들렀다. 사무직원들은 모두 퇴근했는지 노령의 원장의사가 접수부터 진료까지 했다. 정황을 설명하자 그는 지인의 팔에 주사바늘을 꼽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전증마냥 손을 떠는 것이 아닌가. “원장님, 왜 그러시죠” 불안함에 다그쳤다. 말문을 여는 그의 입에서는 ‘알코올’ 기운이 역력했고 얼굴엔 홍조가 퍼져있었다. “원장님, 이러시면 안 되죠. 저, 신고합니다.” 높은 열로 혼절 직전의 지인을 데리고 나오며 신고를 할까 말까 꽤나 고민했었다.

최근 언론, 사회관계망 등에서는 의료, 법률 등의 서비스가 ‘공공재’에 해당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각자의 판단영역인 듯하지만 ‘공익적 서비스’라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자격사란 국가가 공인하는 것으로 인원, 실력검증 방법 등을 엄격히 규율해 적정 규모로 최상의 서비스를 펼치기 위한 입법자의 결단이다. 희소성과 실력에 따르는, 수고와 노력에 대한 대가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것 또한 사회적 합의다.

그런데 희소성과 전문성은 자칫 ‘무관심’과 ‘무례’로, 그 소비자들을 화나게 한다. 대체제가 없는 한,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그런 불친절을 ‘그러려니….’ 하고 감내하며 다시 그 희소한 전문자격사를 찾아가야만 한다. 의사들은 “요즘 환자 모두가 똑똑해, 일일이 대응한다는 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닙니다”라고 하고,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이 엄청 똑똑해요. 또 실컷 상담을 하고 나면 나홀로소송, 아니면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라고 볼멘소리들이다.

모두가 먹고사는 일이 전쟁터마냥 녹록지가 않다. “이젠 이 짓도 못해 먹겠습니다”라는 변호사들을 만날 때면 “에이~ 그래도 남부럽지 않은 최고의 자격사인데…. 그럼, 1년만 일반 직장생활 해 보실래요?”라고 응대하곤 한다. “먹고사는 일”이라는 표현에 한 베테랑 변호사는 “법조인은 먹고사는 일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직업입니다”고 응수한다. 맞다. 여전히 국민들은 법조인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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