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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회_해시태그]의정부역 앞 안중근 동상
노승민 변호사·경기북부회  |  smnoh17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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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승인 2018.05.28  09: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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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만주 하얼빈역 1번 플랫폼. 한 무리의 일본 고위 관료들과 러시아 장성들이 러시아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었다. 사내는 두툼한 외투 깊숙이 오른손으로 권총을 쥔 채 그를 찾으려 했다. 비슷한 옷차림 탓에 누가 그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며칠 전 차이자거우역에서 그를 없애는 데 실패한 동지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가 사내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듯 했다. 차디찬 바람에 팔자 콧수염이 바르르 떨렸다. 동지들과 피를 흘리며 자른 왼손 약지손가락 끝이 쓰려왔다.

그때였다. 일본 고위 관료들이 의장대 사열을 마치고 뒤돌아섰다. 한 일본인이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였다. 그이길 바랐다.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사내의 권총에서 한민족의 절규가, 조선인의 피울음이, 대한국민의 비분강개가 뿜어 나왔다.

“탕, 탕, 탕, 코레야 우라(대한민국 만세의 러시아어)”

안중근 의사는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그렇게 저격했다. 작년 여름경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과 신세계백화점 사이의 평화공원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안중근 동상이 세워졌다. 의정부시는 2015년경부터 중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차하헐학회와 꾸준히 교류를 해 왔는데, 차하헐학회에서 지속적인 한·중 교류를 기원하기 위해서 의정부시에 안중근 동상을 기증했다고 한다.

봄장마가 그친 맑게 갠 어느 주말 지인과 함께 의정부 신세계백화점에 들렀다가 안중근 동상을 보러 갔다. 안중근 동상 주위로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그의 유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 등이 잘 꾸며져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이 동상은 낯설었다.

의거 당시 안 의사의 나이는 30세였고,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의 1910년 2월 7일자 제1회 공판시말서에 의하면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5m 전방에 서서 조준사격을 했다. 의정부 안중근 동상의 얼굴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모습이 아니었고 40대 중후반은 되어 보였다. 외투를 휘날리며 힘차게 뛰어가는 모습도 최소한 안중근 의사의 피고인 진술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날 낯설게 한 건 이 동상을 둘러싼 치열한 민·형사상 다툼이다.

시민단체 버드나무 포럼은 최근 안중근 동상의 기증 및 설치 과정에서 의정부시장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형법상 공무상비밀누설 및 명예훼손을 하였다는 혐의로 고소했고, 현 시장 역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맞고소를 한 상태다. 나아가 버드나무 포럼은 안중근 동상이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에 위반된 공공건축물이라는 이유로 철거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해 보면 연관 검색어에 항상 도시락 폭탄이 있다고 한다. 함께 간 지인도 안 의사가 사용한 게 수류탄인지 도시락 폭탄인지 헷갈려한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형된 조형물이라도 정치적인 논쟁의 씨앗이 되는 예술품이라도, 사람들이 만 서른 사내의 뜨거운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콘크리트로 갇힌 사각진 소비 공간에서 가져온 헤이즐넛 더블샷을 마시면서, 먹이를 쫓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눈빛처럼 이글거리는 사내의 슬픈 눈망울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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