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2018년작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았다. 서울에서 공무원시험에 낙방한 주인공 혜원은 도피하듯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며칠 후 상경할 것이라던 단언과 달리 혜원은 감자도 심고, 시루떡도 만들고, 감도 말리면서 그곳의 사계절을 온몸으로 산다. 세 계절쯤 묵묵히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소꿉친구가 말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쥐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니’.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도망치듯 친구와 멀어진다.

그 장면에서 나를 만났다.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또래 변호사들을 만났다. 제각기 만족스럽게 살고 싶어 젊음을 연료삼아 달리고는 있는데, 이 방향이 맞는지 알쏭달쏭하다는 고민. 우리는 각자의 사정만큼이나 다양한 문제를 지고 눈앞의 과업을 빠르게 수행하면서 속도를 재촉하며 걷는다. 과부하를 이겨내는 것이 성장의 신호요 청춘의 미덕이라 여기면서.

영화 말미, 그곳에서 끝내 오랜 응어리를 풀어낸 혜원은 말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리틀 포레스트, 자신만의 작은 숲이 필요하다.” 시골집의 소박한 일상과 소꿉친구들의 온기는 그녀만의 작은 숲이 되어 도시의 삶에 바싹 말라버린 혜원을 다시 살려냈다.

이 땅에서 바쁘고 정신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업으로 자신 있게 변호사를 꼽겠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고민들은 외연의 확장으로 해결되기도 하지만, 의미를 묻는 질문들은 그 뜻을 알기까지 멈춰 서 기다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법조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치고 그 나름의 욕망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드문 일이다. 허나 꼭 쥔 욕망은 때로 무서운 갈증을 가져온다. 스스로를 잘 알고 다스릴 줄 아는 자가 현인이다. 현인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몸도 마음도 건강히 오래도록 이 일을 하고 싶다. 가끔은 나의 작은 숲과 만나고, 숲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잠시 숲으로 오라 손짓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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