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대한항공 회장의 큰 딸인 부사장이 기내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중이던 여객기를 돌려세운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이 국민들의 분노를 산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작은 딸인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소리를 지르고 물이 든 컵을 집어 던진 소위 ‘물벼락 갑질 사건’에 이어, 아내인 일우재단 이사장의 공사장 직원들에 대한 폭언·폭행 동영상까지 공개되면서 또다시 국민들이 공분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대한항공의 ‘대한’이라는 명칭을 못쓰게 하라, 대한항공 로고의 태극 문양을 강제 회수하라, 공무 수행 시 대한항공 이용을 못하게 하라, 심지어 국외로 추방해야 한다는 등 대한항공과 오너 일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우리사회에는 ‘갑을관계’라는 말이 있다. 원래 ‘갑’과 ‘을’은 계약의 쌍방 당사자를 의미하는 용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갑을관계라고 하면, 경제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강자의 부당한 횡포, 약자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모욕적인 대우와 같은 사회문화적 요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갑의 부당한 언행을 ‘갑질’이라고 부른다.

갑을관계는 고용주와 피용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점과 대리점 등 주로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표적이지만, 백화점 손님과 종업원과 같이 계약관계 없는 일시적, 일회적 갑을관계도 존재한다.

통상 갑을관계는 복합적이고 중첩적이어서 한 사람이 어떤 경우에는 갑이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을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모든 관계에서 갑인 경우를 ‘슈퍼 갑’이라고 부른다. 대기업과 오너 일가가 대표적 ‘슈퍼 갑’이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갑질 당사자가 들끓는 여론에 의해 해임되거나 임원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한다. 대기업 총수가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과를 하기도 한고, 심지어 구속되거나 형사 처벌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갑질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러한 대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 행태는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인성이나 경영능력이 부족함에도 대기업 오너 일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영에 참여시킨다거나, 큰 과오를 범하여 회사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끼친 경우에도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는 ‘족벌경영’ 시스템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전문경영인이 아닌 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견제하기 위한 이사회 제도 또는 소수주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견제 시스템 등 총체적인 제도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갑을관계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사회가 갑질 논란이 많은 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계약이라는 근대적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의 경제력에 걸맞은 의식개혁이 필요한 때다. 입장을 바꾸어 갑질 당하는 사람이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라면 과연 지금처럼 갑질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대단한 ‘슈퍼 갑’일지라도 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갑 역시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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