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기자의 취재원은 판사가 아니라 판결이다.” 한 판사가 기자에게 말했다. 특정한 여론과 반대되는 판단을 내린 판사의 신상이나 성향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을 때다. 언론이 여론에 편승하지 말고 본질적인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시작되자 법원도 시끄러워졌다. 구속영장이 기각될 때마다 여론은 분노했고, 일부 언론들도 ‘판사 신상털기’에 가담했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는 ‘장발장 판사’라고 불렸다. 과거 단순 절도 사건에는 실형을 내렸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법관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압력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판사의 말에 완전히 수긍할 수도 없었다. ‘판결’만 봐도 비판 지점이 많았다.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후 일부 매체와 인터뷰에서 ‘법리는 명확했으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이 부회장의 석방 여부’였다고 했다. 개별 재판부가 선고 직후 언론과 접촉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 중 유일하게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1심과 달리 뇌물액이 확연히 줄었다.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판결문은 불친절했다. 당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논거를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데 판결 근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격언과 동떨어진 일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이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문 전문을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판사가 아니라 판결을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법조기자단 출입정지 1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법원에서 제공된 판결문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부 룰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덕분에 판결문을 제공받는 취재 편의를 누릴 땐 알지 못했던 문제점을 깨달았다.

판결문은 일반 시민에게 너무나 멀리 있었다. 현재 법원의 판결문 열람 시스템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는 헌법 제109조의 취지를 실현하지 못한다. 해당 사건번호를 알아야 하고, 건당 천 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판결문을 받더라도 과한 비실명 처리로 보기 어렵다. 또 열람 제한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열린 판결문’ 기획을 통해 국정농단 사건의 판결문 24개를 추가로 공개했다. 앞으로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판결은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그 판사의 말처럼 기자도, 국민도 판사가 아닌 판결문으로 법원의 판단을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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