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전후로 평양냉면이 화제다. 주변에서 회담 전후로 냉면을 찾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도 주말 사이 국내 유명 냉면집과 대형마트 냉면류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하니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평양냉면이 특히 더 화제가 되었던 점은 북측이 제공한 평양냉면이 우리가 알고 있던 예의 평양냉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고로 평양냉면이란 100% 회백색 메밀 순면의 물냉면이고, 가위로 면을 잘라 먹어서는 아니되고, 빨간 양념장이나 겨자, 식초 등을 더해서 먹으면 음식 본연의 맛을 즐길 줄 모르는 것이라는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감히 그 기준을 어기고 평양냉면을 먹으려면 이를 안타까이 여기는 누군가로부터 본래의 맛과 먹는 방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들으며 타박을 받는다고 하여 소위 ‘면스플레인’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데, 정작 평양에서 제일로 치는 냉면집에서 먹는 평양냉면이란 것은 검붉은 면에 진한 빛깔 육수에 잠겨 있는 모양새에, 먹는 방법도 면에 식초를 치고 육수에 양념장과 겨자를 풀어먹는다는 것이다. 평양냉면 본래의 맛이라고 말하여지던 것이 진짜 평양냉면과는 거리가 있는, 별 근거 없는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그간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자못 비장하게 오가던 온갖 논쟁과 참견이 한 순간에 우스워졌다.

각자 기호에 맞게, 혹은 점포마다 특색 있게 먹어야 할 음식까지 본래의 맛을 따지는 개념과 기준이 있고, 모든 사람에 그에 따라야 하는 것처럼 되었지만, 기실 그 기준이야말로 근본 없는 것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졌으니, 평양냉면계에서는 가히 해방의 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준에 벗어나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은 단지 그 자리에서 구박을 당할 뿐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이나 개념과 다른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경우 순식간에 ‘무개념’으로 매도되어 광범위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한순간에 직장을 잃기도 한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각자의 기준이나 개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거리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혐오스러운 표현을 쏟아내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나 개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며칠 전 외국 방송사가 한 설문조사 결과 타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과 포용력이 전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국 사회 분위기가 타인의 문화, 성격, 배경 등에 관용적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한국인 10명 중 2명만이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조사대상 27개국 중 26위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나 ‘개념’이 틀릴 수 있다거나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외국인, 이주민, 성소수자, 탈북민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갈수록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섣불리 남을 평가하기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나 개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회의 관용과 포용력일 것이다.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대화의 노력만큼이나 우리 포용력을 높이기 위한 소통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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