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야! 2008년 2월 초순, 네가 법관 임명장을 받고 서울중앙지법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의 감격은 실로 대단했다.

네가 무척 대견스러웠고 자랑스럽기도 했으며 마음껏 축하를 보냈다.

그런데 벌써 10년 세월이 지나, 네가 정작 연임이 되고 보니 마냥 축하만 해줄 수가 없구나. 법관을 종신직이 아닌 임기직으로 정한 헌법의 취지를 보더라도 연임이 되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주기를 바란다.

네가 초임 때 ‘새내기 법관이 된 막내딸에게’란 글에서도 당부했듯이 법관이란 직책이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긴 하지만 타 직종보다 항상 엄격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자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길 바란다.

법관은 같은 인간이면서도 남의 죄를 다스리고 이해가 상반되는 당사자들의 시비를 가려주어야 하는 직업인 만큼 다른 공직자에 비해 전문지식 못지않게 더욱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첫째로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서 강직한 성품을 길러야 하고, 어쩌면 구도자처럼 순수하고 청렴한 삶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법관으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임을 다시금 강조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같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 풍조가 팽배하고 사법개혁의 여론이 비등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더욱 처신을 신중히 하고 수신(修身)에 매진하길 바란다.

둘째로 법관은 모름지기 반(半) 학구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날로 복잡다단해지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폭넓게 습득해야 함을 물론이고 수시로 변하는 판례동향을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며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서 다양한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야 한다.

시간을 안배해서 여가를 즐기되 늘 책을 가까이하고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한다. 원래 불문학도로서 유학을 다녀와서 대학교수가 되고 여류작가가 되겠다던 네가 아니냐?

막내야! 지금이 아주 조심해야 할 시기다.

법조 경력이 10년쯤 되면 자칫 안일과 타성에 젖기가 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이 싹트기도 할 무렵이다.

더욱 더 자기 수양에 힘쓰고 겸손해져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로 중견 법관일수록 조직 내외를 불문하고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법원도 조직사회인 만큼 상사에게는 직무 내외를 가릴 것 없이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동료들한테는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늘 상대방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하고 같이 일하는 일반직한테도 너무 딱딱하게 업무적으로만 대하지 말고, 잦은 대화를 통해서 애로사항을 들어보고 가끔은 따뜻한 인간미를 발휘해서 친근하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로 이제는 중견법관답게 좀 더 과감하고 소신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 흔히 법원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평이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법이 모든 사회현상을 규율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는 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거나 기존 판례에만 얽매이지 말고 합리적이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된다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소신껏 판결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여성법관답게 법정 분위기를 보다 부드럽게 이끌고 특히 재야법조인에 관해서는 법관의 말 한마디, 무심코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사건 당사자들이나 담당 변호사한테 끼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공연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구설수에 오를 빌미를 제공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법정에서는 되도록 말을 아껴쓰되 반드시 예의를 갖추고 정제된 표현을 써야 한다. 예기치 않는 질문에는 가급적 즉답을 피하고 충분히 검토한 후 추후에 답변하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최선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상대방의 인격이나 명예에 관련되는 발언은 절대로 삼가 해야 하고 사건의 결과를 예단할 수 있는 언사도 역시 절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법관은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을 늘 명심하기 바란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더 있다만 췌언이 될까 봐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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