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라는 말은 어딜 가나 통용된다. 넉살 좋은 남자 기자들은 첫 술자리에서 취재원을 “형님”이라고 곧잘 부른다. 여전히 남성이 주를 이루는 법조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간 술자리에서 형님 소리를 들은 나는 순간 당황스럽다. 앗, 나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형님 앞에서 “판사님” “검사님”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들의 다정한 모습에 괜스레 취재원 관계에서 밀린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우리는 유독 형님(오빠)과 아우가 많다. 타인을 친근함을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가족 호칭을 택한 순간 타인과 타인의 만남이 사적인 관계로 변한다. 어색함을 없애고 서로의 간격을 좁힌다. 나이, 직업, 계급 등 위계질서를 허문다. 운동권 학생들이 ‘선배’ 대신 형이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보수적이고 취재 벽이 높은 법조를 출입하는 기자에게도 유용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여자 기자들은 ‘오빠’라고 부르면 될까. 기자 생활을 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아직 들어본 적 없다. 만약에 여자 기자가 취재원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상상해보자. 장담컨대 곧장 ‘지라시’가 돌 것이다. ‘모 언론사 여기자, 술자리서 판사한테 오빠 취재함.’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이른바 ‘오빠 취재’는 부정적 의미를 띈다. 형님과 다르게 오빠라는 호칭에는 일종의 ‘유혹’이 들어있다고들 믿나 보다. 그래서 차마 오빠라고는 못 하고 여성임에도 형님 호칭을 사용하는 기자들도 있다. 형님 문화에 끼고 싶은 여자 기자들의 몸부림이다.

듣는 사람 말하는 사람 모두 기분 좋은 형님 호칭을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형님(오빠)이라 부를 수 없는 여성들은 그 상황에서 배제된다. 언어를 독점한 남성이 성별만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우위에 서는 셈이다. 동성 간 끈끈함의 표현이라며 여자는 ‘언니’라고 부르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언어가 불평등한 문화를 더욱 공고화한다는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와 취재원과의 관계도 생각해볼 문제다. 갓 입사했을 때 선배가 한 블로그 글을 건넸다. 신입 기자들에게 전하는 충고가 담긴 글이었다. 블로그 주인은 불분명하다. 익명의 작성자가 전한 충고 1번은 ‘취재원과 친구가 되지 마라’였다. “인맥을 넓히라는 것이 취재원과 한통속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기자 본분은 보도이고 기자 고객은 독자들, 더 나아가 국민들이다.” 개인적인 친분을 쌓지 말라는 게 아니다. 공적-사적 관계를 칼로 물 베듯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남성 중심 문화, 공적관계를 지나치게 ‘가족화’하는 문화를 고민해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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