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종국적으로 판결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절차이다. 그리고 판결은 법원이 판결의 내용을 확정하여 판결서(判決書)를 작성한 다음에, 이에 기하여 선고하는 단계를 거쳐 성립된다. 따라서 판결서는 법관이 사건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밝히는 문서이자, 사회와 소통하는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인 셈이다.

물론 판결서의 일차적인 청중은 당사자와 소송대리인, 또는 피고인과 변호인이며, 판결서의 일차적인 기능은 당사자 등에게 재판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판결서가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우리나라 판결서는 오랫동안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여 일본식 용어나 표현이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문장도 장황하고 다중적 논증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로 인해 일반인은 판결서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법관은 판결서의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어 재판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에 따라 ‘새로운 판결서 작성방식’ 등 판결의 간이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판결서 간이화는 국민에게 이해하기 쉽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서를 제공한다는 측면보다는 법관의 업무 감경이라는 측면이 더 강조되었다. 그 결과, 판결서에 판결이유가 충분히 적시되지 않고 주문에 이르게 되는 논증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판결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물론 판결이유의 생략 내지 빈곤이 곧 판결의 부당성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패소한 당사자에게 패소한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서 판결결과에 대한 승복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판결이유의 충실화를 통한 판결의 투명성 제고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판결서의 청중은 당사자 및 소송대리인에 그치지 않고 변호사, 미래의 법관, 국회의원, 현재와 미래의 법대생, 신문독자, 상급법원의 법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잠재적인 청중들을 포괄한다. 판결서는 수범자에게 앞으로 준수해야 할 규범을 제시하고 그 규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즉 판결은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선례로서 기능한다. 이렇듯 판례가 사실상의 법이라면 법관을 비롯한 법률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널리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이재용 사건의 판결서에 대한 열람 제한을 계기로 판결서의 공개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의 해석론으로는 열람 제한이 적법하다고 할지라도, 과연 판결서의 기능이나 국민의 알권리 등에 비추어 이러한 열람 제한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판결서에 대한 접근가능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률을 시급히 개정함으로써 판결서의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흔히 법관은 판결로써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판결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판결서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면 과연 판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10년 만에 다시 시작된 사법개혁이 이번에는 ‘열린 사법(司法)’을 표방하고 있다. 새로운 사법개혁이 진정으로 ‘열린 사법’을 지향한다면 그 출발점은 판결 및 판결서의 투명성 제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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