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개정 이유는 이 법으로 국내 축산농가나 화훼농가에 피해가 크다는 점이 관련 단체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장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을 지지하는 여론을 생각하면 법의 효과를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럴 때일수록 법적인 관점에서 엄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개정된 시행령에서는 제공되는 선물이 농수산물 등인 경우에만 예외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공직자 등의 부패방지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고, 법률의 수권조항도 가액범위만을 정하도록 위임하였으므로, 하위법령에서 농수산물을 다른 물품과 차별하는 것은 위임범위 일탈 및 평등에 반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개정을 추진하려면 어렵더라도 법률에 근거를 마련하였어야 했다.

청탁금지법의 시행 초기에 학생이 전하는 캔커피나 스승의 날 꽃다발이 금품수수금지에 위반되는지가 논란이 되었다. 법률은 ‘원활한 직무수행’이라고 하였으므로, 수수된 금품이 직무와 관련되더라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범위 안이라면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었다. 그런데 권익위는 수차례 행정해석을 통하여 담당교사(혹은 교수)의 경우에는 가액기준 이하라도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목적을 벗어나므로 예외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하여 논란을 키웠다.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와 같은 개념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사회관행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에게 명확한 행위지침을 주기 어렵다.

만일, 수수금품이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뇌물죄로 처벌할 일이지 이 법을 확대적용할 것은 아니다. 이를 넘어 대가성은 없지만 사교·의례 등이 아닌 경우는 상정하기 어렵고, 교사라고 특별히 엄격할 것도 아니다. 이처럼 처벌법규를 행정부가 확대해석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를 근거 없이 제한하는 것이고, 처벌규정에 관한 입증책임이나 무죄추정의 원칙에 비추어도 부당하다.

청탁금지법의 문제점은 부정청탁금지에서 더 두드러진다. 부정한 청탁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윤리적 요청이겠지만, 문제는 부정한지 여부를 엄밀한 법적 판단을 거친 이후에나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법은 금지행위의 유형이 방대하고 대가관계 없는 말로도 청탁이 성립하므로, 자칫하면 국민과 접촉하는 공무원의 업무수행 자체를 위축시킬 염려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나 인·허가 결정과정에 있는 공무원처럼 이해당사자와의 접촉 자체를 조심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이해당사자를 만나고, 업계의 요구를 수렴하며, 민원인을 설득해야 할 행정부 공무원에게 이 법이 까다로운 민원인과의 접촉 자체를 배척할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취재원을 만나는 기자나 학생을 상담하는 교사라면 더욱 그렇다. 부정청탁의 위험은 공무원이 이를 받아들였을 때 현실화되는 것이지, 무모한 민원인이 미리 책임질 일도 아니다.

부패는 공직자의 직무의무 위반을 핵심요소로 하는 개념이므로 부패방지법제는 공직자를 규율하는 것이 본질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이 법으로 처벌된 사안들은 대부분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었다는 점은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지난 국정농단사태를 거치면서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은밀하게 숨어들어 합법을 가장한 거대 부패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입법의 신중함과 스마트한 법의 운영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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