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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채무자를 위한 변명
홍성준 변호사  |  sungjun.hong@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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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승인 2018.04.09  09: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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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공직에서 마지막으로 담당한 업무가 도산 사건이었던 것과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만 브라더스 사태 발발 얼마 전에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는 지극히 우연한 사정으로 지금까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빈번하게 도산 사건을 처리할 기회를 가져서 조금 더 많은 도산 사건에 대한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산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로서 필연적으로 채무의 감면이 수반되는 도산사건을 채무자를 대리해서 처리하다 보면, 운명적으로 이른 바 ‘도덕적 해이론’이라는 비판을 만나게 된다. 우리 사회가 개인 채무자에 대한 면책 결정과 과중한 채무의 강제적 조정을 통한 기업의 재건이라는 법적 채무 조정 절차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도덕적 해이론(경제학에서 말하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부도적하다는 것이다)’을 거론하는 이해당사자를 만나게 된다.

사실 도산절차를 통해 감면하여야 하는 과중한 채무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시장에서도 존재하는 경쟁에서의 도태로 인한 사업의 실패, 그리고 직장의 폐업이나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한 실직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이 도덕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채무자에 대한 ‘도덕적 해이론’의 비판이 채무자가 채무 감면의 이익을 취하면서 자신의 재산은 은닉한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우리 법률은 그런 채무자를 제재할 충분한 장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비용과 노력으로 그런 장치를 이용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채무자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중한 채무를 상환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채무자에게 경제적 노예제를 강요하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대의 비판도 가능하다.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채무의 감면이 정당하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고도로 신봉하는 미국이 100년이 넘도록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로 하여금 기존 채무의 압박과 굴레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삶의 기회와 미래를 설계할 깨끗한 상태를 향유하도록 면책을 핵심으로 하는 파산절차를 운영해 오고 있다는 것에서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요컨대, 도산절차에서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채무가 감면된다는 것이 부당하다거나 부도덕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998년 최초의 면책 결정 이후 이미 100만명이 넘는 개인 채무자가 면책의 혜택으로 새 출발을 했다고 한다. 만일 ‘도덕적 해이론’을 근거로 이 채무자들에게 면책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 채무자들이 발가벗기운 채 길거리로 내몰렸다면, 그들과 그 가족들의 삶의 붕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벌어졌을 것이고, 또 이들을 감당할 공적 부조의 부담도 많이 늘어났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동안 100만명에 넘는 채무자가 면책 결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금융권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는 보도가 거의 매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 사회가 최근 들어 청년들의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여 창업에 도전할 것을 권하고 있는데,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다섯 중 넷은 불과 수년 만에 실패하는 것이 확실한 창업을 장려하면서 ‘도덕적 해이론’을 내세워 면책에 적대적이어서는 창업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는 청년들로부터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과중한 채무의 부담에 시달리는 채무자의 면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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