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다음달에도 꼭 오실거죠?” “그럼 언제 내가 한번이라도 안 온 달이 있니? 다음달에도 꼭 OO이 보러 올게. 그동안 잘 지내야 돼” 지난 1월 안양정심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멘티 OO이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눴던 인사다.

아이쿠, 그런데 한달은 왜 이렇게 눈 깜박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걸까. 더구나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는데다, 설 연휴까지 끼어 있는 바람에 결국 OO이를 만나러 가지 못하고 그 달을 걸러 버렸다. 3월은 어느 변호사에게나 참 바쁜 달이다. 차곡차곡 쌓여 있는 기일을 치러내다 보니 아이를 만나러 가지도 못한 채 마지막 주가 닥쳐 버렸다.

‘이번달에도 못가면 OO이가 진짜 실망할 텐데….’ 무거운 마음으로 밀린 일들을 꾸역꾸역 처리하는데 아이가 보낸 편지까지 도착했다. “변호사님, 2월에는 왜 안 오셨어요. 너무 섭섭했어요ㅠㅠ 3월에는 꼭 와주세요. 그리고 저 빈츠랑 스키틀즈가 먹고 싶어요.” 아이의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내 마음을 콕콕 찌른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2016년 여변봉사단을 꾸려 여자소년원생과 여성변호사의 1대1 멘토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멘토링을 할까 말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인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싶어 꽤 고민하다가 ‘일단 시작해 보기나 하자’ 했던 것이 지금 햇수로 3년째가 되고 있다. OO이는 나의 두 번째 멘티이다. 작년 5월경에 입소한 지금은 19살이 된 눈이 예쁜 여학생이다. 아이가 자기가 소년원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주는데, 내 눈 앞에 있는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른 아이인지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걸까, 뭘 해줄 수 있을까’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개별면회를 가서 만난 OO이는 우울증 증상까지 있어 보였다. 소년원에서의 미용수업이 어렵고 자기 적성에도 맞지 않다, 갇혀 있는 것도 너무 답답하다는 등 괴로움을 토로하는 OO이는 소년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하였다.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4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한창 인기 있던 프로듀스 101 경연 결과 등 아이가 궁금해 하는 바깥소식을 전해주고 먹고 싶다는 간식도 가져가 나눠 먹으면서 별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가끔은 몰래 선생님 불평도 함께 하고….

그럼에도 수개월이 지난 지금, 다행히도 아이는 그렇게 싫다고, 못하겠다고 했던 미용자격증도 취득하고 거기다 네일아트자격증까지 취득하려고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우울한 아이는 이제 없고,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 정현종의 글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에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내가 누구를 만나서 꼭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특별한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아이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이 쌓이면서 어쩌면 어마어마한 만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월이 가기 전에 빈츠와 스키틀즈, 참깨라면을 사들고 OO이를 만나 수다 떨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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