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거래에서 준거법이나 관할법원을 약정하는 것이 반드시 쉬운 일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한쪽 당사자 혹은 양 당사자에게 불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중재인, 절차,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중재제도는 특히 국제거래 분야에서 유용하며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한국 기업이 한국의 중재절차를 선택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중재제도 이용이 매우 빈번한 해운·조선 분야를 보면 압도적으로 영국중재 제도를 선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싱가포르 중재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한국의 중재절차는 별로 선호하지 않고 있다. 다른 국제거래 분야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한국에는 언어, 법 지식, 전문성 측면에서 국제거래 사건을 담당할 중재인의 수가 부족하고 국제거래 분야에 적합한 중재규칙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분쟁해결에 필요한 국제적인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국제거래 분야의 인프라 중 하나로서 분쟁해결제도 완비 여부는 국제거래 활성화에 매우 중요하며 긴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분쟁해결제도가 거래의 뒤처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오히려 관련 거래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꼭 필요한 인프라 요소 중 하나라는 인식의 전환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싱가포르가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통하여 새로운 중재규칙을 제정하고 자국의 중재절차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싱가포르 기업이 관련되지 않은 분쟁들도 싱가포르 중재절차로 끌어 들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도 변하고 있다. 과거 우리는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 제도만 가지고 있었으나 이는 국내, 국제 거래를 구별하고 있지 않아 국제거래 분쟁 해결에 적합하지 않은 면들이 많았으며, 기관중재라는 점에서 당사자의 개별적인 요구에 부합하기 힘든 측면도 강하였다. 이에 따라, 대한상사중재원은 2007년 국제거래에 특화된 국제중재규칙을 제정하여 운용함으로서 적어도 일반적인 국제거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의 밑바탕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국제중재규칙이 특정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중재제도가 발달한 나라들은 그에 맞는 중재제도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영국의 LMAA중재, 싱가포르의 SIAC중재 등이 그 예이며, 심지어 중국도 근래에 중국해사중재위원회를 설립하여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금년 국내에서 서울해사중재협회가 결성되어 활동을 개시한 것은 기존 기관중재 외에 임의중재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서 우리 중재제도를 더욱 다양화시키고 그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획기적인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영미법계의 중재제도가 임의중재 중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뒤늦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대한상사중재원은 이번 달 부산에서 해운·조선 분야를 겨냥한 아시아태평양 해사중재센터를 개소하는데, 향후 활발한 이용 여부가 관건이다. 지금 영국 및 아시아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사건을 유치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한국도 이에 뛰어 들어 경쟁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향후 어느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승자가 될 수 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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