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를 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쓴다. 가능한 무채색 정장을 입고 안색이 밝아보이도록 화장을 하되 색이 과하지 않도록 신경쓴다. 이제 사무실로 출근하면 집에서의 나와는 달라야 한다.

일터는 전장(戰場)이다. 내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에 간섭하면서 싸우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면을 쓰지 않고 싸우려면 괴롭다. 전장에서는 씩씩하고 당당해야 하니 나의 명랑함이나 감수성 같은 것들은 가면 뒤에 숨는다.

본연의 나는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나 지극히 사적인 모임에서만 나타나는데 가면을 쓰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차 내 인생은 뒷전이 된다. 요즘은 매력적인 모습만 드러내야 하는 SNS라는 세계까지 등장해서 가면을 쓰지 않는 순간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얼마 전 꽤 잘 재판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관련 후기를 SNS에 근사하게 게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조정 과정에서 상대방과 고성이 오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몸싸움도 불사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불필요한 감정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그 순간 상대방은 내 가면을 벗겨버렸다. 가면 뒤에 싫은 소리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은 소극적인 내가 나타났다. 나를 위해서였다면 타인의 손에 쥔 것을 뺏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동료를 질투하며 그가 가진 것이라도 뺏으려고 욕심내는 모습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내 문제는 타인의 인생에서 비롯되고 그 결과가 내 하루하루를 결정한다. 그렇게 내 인생은 타인의 삶에 세들어 있었다. 그래서 매일 가면을 쓰고 최면을 걸고 나서지만, 가면은 가면일 뿐이었다.

진정성이나 자존감을 일에서 찾는 것은 현대인의 낭만주의적 변형이라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나의 이런 고민을 들은 친구는 어차피 다들 엮여있고 누구 하나 완전자립으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남의 인생 세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위로했다.

가면을 쓰고, 세들어 있는 인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오랜 고민 끝에 내가 풀어낸 해답은 ‘관계의 저소비’였다. 관계의 질을 집중하면서 양은 좀 줄여보는 것이다. 변호사도 영업이니 폭넓은 인간 관계부터 갖추라는 조언을 수도 없이 듣는 상황에 자칫 관계의 저소비가 철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에 세들어 밥벌이를 해야하니 가면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가면을 쓰는 이유는 남을 대하는 관계에서 나의 입장이나 지위를 지키기 위함이다. 즉 체면이다.

짧은 경험이지만 그동안 관계의 질에 대한 고민없이 피상적인 관계의 폭만 확장시켜가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러한 관계 맺음 속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대를 판단하게 되고 그럴 때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체면 혹은 상대방의 체면을 생각해서 행동하게 되고 이러한 관계의 반복으로 피로감이 쌓이게 된다.

체면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도 본다. 체면 자체가 목적이 되면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꾸미고 욕심을 낸다.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출신, 지위 등을 이유로 자신의 체면을 위해 상대방의 체면은 무시하기도 한다.

관계의 저소비는, 가면을 쓰고 타인의 삶에 세들어 살아가는 상황은 피할 수 없으니 관계의 확장에서 오는 피로감에서 벗어나고 체면이 목적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진정성있는 관계에 집중하면서 변호사다운 가면을 써보겠다는 철없는 노력.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